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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6. 6.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의 모자로고, 구단로고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의 역사 

아메리칸리그에서 창립 멤버인 8팀 중 하나로 워싱턴 세네터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초기에는 그야말로 성적이 부진했다. 매번 지는 동네북의 이미지가 아주 강했던 팀이었다. 그나마 월터 존슨이라는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가 이 구단에 있었고 그가 열심히 투수의 역할을 하면서 팀을 반석에 올리더니 기어이 1924년 1925년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24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1924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버키 해리스가 친 타구가 이상한 바운드로 굴러가면서 내야안타로 결승점을 뽑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1933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워싱턴을 뜨기 전까지 세네터스는 가을야구 근처에도 못 가는 상황이 계속된다. 그리고 월터 존슨이 은퇴하고는 다시 암흑기에 들어섰고, 팀은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그래서 붙은 말이 전쟁의 시작, 평화의 시작, 아메리칸 리그의 마지막이었다. 전쟁을 처음 선포하고, 종전을 처음 선언한 곳이 워싱턴이지만, 아메리칸 리그에서만은 계속 꼴찌라는 놀림을 받았다. 게다가 1955년에 팀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던 클락 그리피스 구단주가 사망하고 조카 캘빈이 구단을 이어받았다. 결국 이 동네에서는 도저히 비전을 찾지 못했는지, 연고지 이전을 결심하게 된다. 사무국이 반대했지만, 결국 워싱턴에 같은 이름의 새로운 팀을 만들기로 하고, 1961년 연고지를 미니애폴리스로 옮겼다. 다만 미니애폴리스 연고이전에 대해선 당시 구단주가 흑인이 적은 도시라서 그랬다는 등 인종차별적 시각이 작용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워싱턴 세네터스는 워싱턴 연고 59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3번 진출했고 (우승 1회, 준우승 1회) 그중 2번이 월터 존슨이 있었을 때였다. 팀명이 미네소타로 된 이유는 NBA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옆에 붙은 세인트 폴을 배려하지 않고 미니애폴리스의 도시명만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주명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도시의 마음을 모두 잡기 위해 붙인 새로운 팀명이 바로 쌍둥이라는 뜻의 트윈스(Twins)다. 다만 이렇게 도시 거주민들의 맘을 샀을지 몰라도, 구단주의 투자 소홀로 전력이 부진하다보니 좋지 않은 성적이 계속되었다. 워싱턴 시절인 1933년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 나간 것이 전부였고, 미네소타로 와서는 1987년까지 우승이 없었다. 1965년 32년 만에 리그 우승을 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패배, 1969년과 1970년에 지구우승을 차지했지만 ALCS에서 당대 최강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패배하면서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에도 캘빈 구단주의 긴축경영은 지속되어 1970년대 FA제도 시행 후 로드 커류와 래리 하일, 간판스타 버트 블라일레븐 등이 연봉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떠났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그와 협상을 하기 기피해서 에이전트를 보내기도 했는데, 에이전트들도 그를 협상 기피대상 1호로 찍었을 정도였다. 하위권으로 쳐져 1990년에는 꼴찌를 차지했지만, 1991년에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탈환하는 기염을 토했다. 상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도 역시 전년도 꼴찌였기 때문에 이 시리즈는 신데렐라 시리즈로 불린다. 시리즈 자체는 월드시리즈 역사에 손꼽히는 명승부였는데, 7차전까지 가서 5번의 한 점 차 승부와 3차례 연장전이 벌어지는 대혈전이었다. 결국 우승은 2승 3패로 밀려 패색이 짙던 6차전 홈경기에서 연장 끝내기 홈런을 친 트윈스의 레전드 커비 퍼켓과 7차전 10이닝 완봉승을 거두면서 1:0 승리를 이끈 잭 모리스를 앞세운 미네소타의 차지였다. 1987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홈 4경기를 모두 이기고 우승했다. 1987, 1991 월드시리즈의 기적적인 우승은 당시 트윈스의 압도적인 홈승률에 기인한다. 1987년의 경우 원정승률은 겨우 4할을 찍을까 말까 하는 저조한 기록을 거두었지만 홈승률은 거의 7할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다. 이는 팬들의 극성스러운 응원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시끄럽기로 유명한 메트로돔의 덕을 봤기 때문이다. 참고로 메트로돔의 응원 소리의 데시벨은 비행기 이륙 소리와 맞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로 그 특유의 하얀색 지붕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원정팀 야수들이 플라이볼 수비를 하는데 매우 애먹었다고 한다. 이런 팬들의 응원과 잘 다져진 전력과 함께 오래도록 강팀으로 군림할 줄 알았더니 팀은 다시 하위권으로 처졌다. 칼 폴라드 역시 전임 구단주 그리피스 가문처럼 그리 돈을 많이 쓰던 입장이 아니라서 주축 선수들을 내주며 커비 퍼켓만 지켰을 뿐이었는데, 정작 커비 퍼켓 녹내장에 의한 시력 이상으로 1996년 조기 은퇴를 하고 만다. 퍼켓의 은퇴 이후에는 20승 투수인 브래드 래드키가 새로이 에이스로 트윈스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큰 활약 없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 그 뒤로 팀은 완전히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MLB 사무국의 지원을 받고 있을 때 MLB 사무국이 리그 축소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몬트리올과 미네소타, 플로리다 말린스가 퇴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구단과 미니애폴리스 시 정부가 신축구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서 이 당시 구단과 팬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퇴출 위기에서 론 가든하이어 감독 아래 선수들이 뭉치고, 토리 헌터 같은 유망주들이 성장 하면서 강팀으로 변신했다. 2002년 지구 우승 이래 2000년대 중부지구를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조 마우어 저스틴 모노, 요한 산타나 등의 선수를 발굴해 내면서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다. 여기에 A.J. 피어진스키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조 네이선을 받아오는 신기의 트레이드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30개 구단 가운데서도 돈을 적게 쓰면서도 효율적인 야구로 명성이 높았다. 새 구장을 개장한 2010년에는 지구 1위를 하며 이번에는 우승하나 싶었지만 전년에 이어 또다시 뉴욕 양키스를 만나 패배 당했다. 워낙 포스트시즌에서 양키스에게 힘을 못 쓰다 보니PS 한정 양키스 도시락이라는 악의 섞인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였다. 2000년대 들어 10년간 포스트 시즌에 6번 올라갔는데 4번을 양키스한테 져서 떨어졌다. 포스트시즌에서 대 양키스 전적은 2승 12패다. 그리고 2017년, 7년 만에 다시 올라간 포스트시즌에서도 양키스에게 와일드카드전에서 패배하며 악연을 이어갔다. 2016년에는 볼티모어와 개막전 첫 경기를 끝내기로 내주면서 패하더니 지구 경쟁팀 로열스를 상대로 불펜 싸움과 타선 집중력에서 밀리며 6연패를 찍고 홈으로 돌아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4연전을 펼쳐 홈 4연전 세 번째 날까지 내줘 9연패를 찍는다. 9연패 다음날 에인절스와 홈경기에서 6회 초 선취점을 내주며 또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가 6회 말 2점을 내며 역전했으나 7회 초 푸홀스의 홈런과 콜 칼훈의 2점 홈런으로 다시금 리드를 빼앗겨 10연패냐는 탄식이 나왔으나 7회 말 2점을 뽑아 동점을 만든 후, 8회 말 한국인 박병호가 결승 2루타를 뽑아내 4:5 역전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고 시즌 첫승을 따낸다. 다음 날 4점을 내주며 끌려가던 걸 동점을 만든 후 8회 말 아르시아와 박병호의 백투백 홈런으로 역전하여 2연승을 달성했다. 밀워키와 인터리그 홈 1차전에서는 타선의 집중력에서 앞서며 6회까지 리드를 가져갔고, 7회가 시작하기 전 내린 비로 인해 강우콜드가 선언되어 4연승을 달성했으나 바로 다음경기를 패하며 연승을 마감하였다. 곧바로 밀워키 원정에서 1승 1패를 거뒀으나 워싱턴 원정 3연전에서 패를 당했는데 4월 24일(현지시간) 경기에서는 9회 말 4:3으로 이기다가 브라이스 하퍼에게 동점솔로포를 헌납한 뒤 16이닝까지 가는 끝에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패하고 말았다. 결국 성적부진으로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2주 남기고 테리 라이언 단장이 경질되었으며, 부단장이었던 롭 앤토니가 임시 단장이 되었다. 시즌 이후, 폴 몰리터 감독이 경질되었고, 그 자리에는 로코 발델리가 부임하게 되었다. 1981년생 감독으로 최연소 감독 기록을 경신했다. 조 마우어가 은퇴를 결정했고, 구단은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며 오프시즌에는 CJ 크론, 조나단 스쿱, 넬슨 크루즈를 영입했다. 2023년 시즌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연승을 기록하면서 잠시 AL 중부 선두로 치고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강팀과의 상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시즌에는 중간 이상의 성적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중부 선두로 치고 나가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지구 강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위닝시리즈를 거뒀고 천적인 뉴욕 양키스 원정에서도 2승 2패로 마쳤다. 그리고 트윈스는 로코 발델리 체제 5년째에 들어가는 시즌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발델리가 AL중부 우승 이상의 활약을 하길 바라고 있는 중이다. 본래 예상대로라면 강팀인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선두를 차지해야 하는데, 현재 둘의 성적이 부상과 불펜의 부진으로 인해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워싱턴 내셔널스에 연속 1승 2패를 기록하며 주춤했으나 4월 24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 3연전 첫 경기에서 소니 그레이의 7이닝 무실점 호투와 조이 갈로의 홈런포 등 활약에 힘입어 6-1 승리를 거두며 2001년 이후 22년 만의 뉴욕 양키스전 위닝 시즌에 1승 만을 남기며 좋은 선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의 개요 

미네소타 트윈스는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 소속 프로야구단이고 미네소타주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에 소속되어 있으며 1901년에 창단하였다. 팀명인 트윈스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 폴이 합쳐진 쌍둥이 도시라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T와 C를 겹쳐서 만든 캡 로고 역시 Twin City를 뜻한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최초로 창단된 8팀 중 하나로, 워싱턴 내셔널스로 창립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의 저조한 실적으로 인해 구단주가 이름을 워싱턴 세너터스로 잠시 바꾸었으나, 곧 다시 원래 이름으로 복귀하였다. 한 가지 주의하여야 할 사실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도 워싱턴 세너터스인데, 그 워싱턴 세너터스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인 워싱턴 세너터스/내셔널스와는 다른 팀으로, 원래 워싱턴 팀이 1961년 미네소타로 이전하면서 새로 생긴 팀이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신인 워싱턴 세너터스다. 팀명의 변천사가 다소 특이하다. 1901년 '워싱턴 세네터스'로 창단했는데, '워싱턴 내셔널스'와 혼용하여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의 해당 이름 팀과는 역사적으로 전혀 무관. 그러다 1961년 연고지를 옮기면서 현재의 '미네소타 트윈스'가 되었는데, 워싱턴에 새로 창단된 팀이 세네터스란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서 썼다. 하지만 역시나 미네소타 트윈스의 역사와는 무관하다. 미네소타로 옮긴 이후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기복이 있지만 우승 경력도 있고 잘할 때는 잘하는 팀으로, 1990년대 암흑기를 거쳐 2000년대는 지구 최강자였으나 2011년부터 다시 급격히 몰락했는데 2010년대 후반 다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후에는 중부 지구 내 꼴찌를 기록하기도 하고, 계속 매 시즌마다 다양한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포스트시즌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악연이다. 메이저 리그 30개 구단 중 제일 추운 지역에 위치해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로코 댄 발델리 : 미국의 前 야구선수, 現 야구 감독. 현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을 역임 중이다. 선수로써는 당대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였으나 부상과 질병으로 인하여 그 뛰어난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일찍 은퇴했지만,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초반 커리어를 이어나가며 향후 MLB를 이끌 차세대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로드 아일랜드 출신으로 비숍 헨드리컨 고교 졸업반 시즌에 복사근 염좌를 안고도 5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당시 발델리는 야구뿐만 아니라 배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도 재능을 보였고, 성적 역시 우수해 4.25의 학점을 바탕으로 프린스턴, 예일, 웨이크 포레스트 등 다수의 명문대 진학을 고려하기도 했다. 이런 발델리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200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번으로 지명했고, 고민 끝에 발델리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의 제의를 거절한다. 프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초반에는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에 성공했다. 입단 첫 해 팀 내 유망주 9위에 랭크된 발델리는 이듬해 5위로 뛰어올랐고, 그다음 해인 2002년에는 시즌 중간에 하이 싱글 A를 정복한 뒤 더블 A를 거쳐 트리플 A까지 연달아 승격하는 기염을 토하며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뽑히는 등, 최고의 외야 유망주로 떠올랐다. 2003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4 시즌 중간에도 잔부상으로 자리를 몇 번 비운 발델리는, 2004년 11월 동생과 야구를 하다가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는 다소 황당한 사고로 수술대에 오르며 2005 시즌 개막 로스터 합류가 불발되고 말았다. 발델리는 꾸준한 재활을 통해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 복귀하고자 했지만, 이번에는 운동하던 도중에 팔꿈치를 다치며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05년을 통째로 수술과 재활에 써버리고 말았다. 당시 탬파베이는 칼 크로포드를 필두로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 젊은 타자들의 약진이 돋보였지만, 발델리의 이탈로 여러모로 아쉬운 애매한 5 툴 데이먼 홀린스나 발만 빠른 조이 개스라이트가 중견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고, 여기에 부동의 4번 타자 오브리 허프마저 부진에 빠지며 외야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발델리가 있었다면 허무하게 최하위로 밀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다. 재활에 오래 걸리는 토미 존 수술인 만큼 2006 시즌도 개막 로스터 합류는 불발되었고, 개막 후 약 두 달이 지나 2006년 6월 7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의 홈경기에서 7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드디어 복귀를 알렸다. 이어진 캔자스시티 로열스 원정에서 복귀 첫 안타를 신고한 발델리는 남은 시즌을 거의 대부분 건강하게 잘 소화하며 시즌을 끝냈다. 심지어는 십자인대 재건술과 토미 존 수술을 모두 받고 왔음에도 주루 능력은 여전했고 수비에서도 여전한 강견에 센스까지 발전하며 부상 이전보다 더욱 발전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오랜 부상 공백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는 모습에 많은 팬들이 다음 시즌을 기대했으나 이번에는 햄스트링이 발델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스프링 트레이닝 도중에 처음 햄스트링을 다쳤고, 이후 회복하여 개막 로스터에는 합류했으나 그 후유증 탓인지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결국 시즌아웃 되었다. 근육 부상이 계속해서 재발하고 상태가 악화되자 발델리는 정기검진을 통해 보다 자세한 원인을 알고자 했고, 그 결과 희귀병이자 불치병으로 알려진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을 진단받게 된다.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은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질병으로, 근육 약화와 운동 불내성 등 초기 증상을 시작으로 케이스에 따라 예후가 천차만별이긴 하나 상태가 심각해질 경우 구토와 발작, 신경 쇠약, 심하게는 사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 특히나 운동선수인 발델리에게 근육 약화라는 증세는 치명타를 넘어 거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발델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재활과 운동을 이어가며 2008년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모습을 드러냈으나, 결국 필드에 복귀하지 못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식이요법을 통한 영양 치료와 각고의 치료를 거치며 결국 6월 중순부터 마이너리그 경기를 소화하기 시작하며 복귀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8월 10일 드디어 액티브 로스터에 등록,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에서 4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리그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꾸준히 포함되며 건재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발델리의 이러한 활약으로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에 대한 관심도가 증대되고 관련 재단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효과도 낳았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맺어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 즈음 다시 한번 정밀 진단을 받았는데, '미토콘드리아 이온통로병'이라는 세부 진단을 다시 받게 되었다. 근병증 중에서도 세포의 문제로 인해 신경 통로에 문제가 발발하는 유형인데, 발델리는 그 사례 중에서도 상태가 양호해 식이요법과 치료만 잘 이어가면 생명 등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무튼 보다 긍정적인 소식과 함께 보스턴에 새 둥지를 튼 발델리는 가족들이 전부 보스턴의 팬이라며 보스턴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로 우익수로 나왔으나 여전히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리고 시즌 막판에는 어깨를 다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되는 등 고생하다가 결국 한 시즌만에 보스턴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발델리는 탬파베이 레이스로 돌아왔다. 최초에는 야구를 할 수 없는 몸상태라는 판단 하에 마이너 리그에서 외야 수비 및 주루 어시스턴트 코치 역할을 맡았으나 발델리 본인은 몸 상태가 좋아지면 선수로 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7월 19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선수로 복귀했다. 싱글 A에서 실전감각을 찾은 뒤 빠르게 승격을 이어간 발델리는 9월 1일 확장 로스터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돌아왔고, 이후 대타 요원 겸 백업 외야수로 활동했다. 이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중도 하차하게 된다. 로스터에서 낙마한 후 발델리는 은퇴 결심을 굳혔고,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의 제의로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2011년 1월 26일, 만 29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탬파베이가 기대하고 팬들이 기대했던 유망주는, 부상과 질병으로 인한 시련 끝에 결국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은퇴 후 발델리는 구단 특별 보좌 역으로 구단에 남았고, 이후 마이너리그 인스트럭터로 전임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케빈 캐시 신임 감독의 부임과 함께 탬파베이 1루 주루 코치로 선임되면서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에 돌아오게 되었다. 2017 시즌부터는 필드 코디네이터로 선임되어 선수들의 수비 코칭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수비 전략 구성과 상대 타자 전력 분석 등의 업무를 맡았다. 2018 시즌 종료 후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최초의 1980년대생 MLB 감독이자, 선임 이후 2021 시즌까지는 MLB 최연소 감독이기도 했다. 2018년 78승으로 부침을 겪던 미네소타는 2019년 30 홈런 타자 5명에 팀 홈런 307개라는 신기록을 작성한 화끈한 장타력을 바탕으로 101승을 거두고 AL 중부지구 1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발델리는 감독 첫 해부터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2020 시즌에도 36승 24패로 AL 중부 1등을 기록해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구단의 영구결번으로는 3. 하먼 킬러브루 : 워싱턴-미네소타를 잇는 강타자. 지독한 투고타저의 시대였던 1960년대 미네소타 트윈스의 중심타자로서 커리어 통산 6번의 홈런왕과 타점왕 4회, 최다볼넷 1위 4회라는 대단한 기록을 작성했으며, 올타임 홈런 랭킹에서 573 홈런으로 역대 11위에 올라있다. 1954년부터 1974년까지 뛰었고, 1975년에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은퇴했으니, 사실상 원 클럽맨. 당연히 명예의 전당 헌액자. 2011년에 타계하여 2011년 유니폼에 그를 기리는 3번을 패치로 달았다. MLB 로고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6. 토니 올리바 : 쿠바 출신으로 1970년대 미네소타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이자 원클럽맨. 미네소타에서만 15년 뛰며 8번 올스타에 뽑혔다.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은 실패하였지만, 그가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2022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7. 조 마우어 : 미네소타 출신에 미네소타 트윈스 진성팬이자 1라운드 유망주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팀에 대한 애정과 헌신, 꾸준했던 실력으로 15 시즌을 미네소타에서만 뛴 선수. 미네소타 트윈스 영구결번 선수 중에서는 역대 최연소다. 10. 톰 켈리 : 선수로서는 딱 한 시즌 메이저리그를 밟았지만, 감독으로서 16년간 미네소타의 감독으로 재직하며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인물이다. 14. 켄트 허벡 : 미네소타 원클럽맨으로 1980년대 활약하며 두 차례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주전 1루 수다. 28.버트 블라일레븐 : 미네소타 암흑기 에이스. 덕분에 커리어 통산 300승을 못하고 승률도 5할 조금 넘는 지경이라 명예의 전당 입성에 무려 14년이 걸렸지만 2011년에 입성. 통산 3701 탈삼진을 기록해 은퇴 당시 탈삼진 순위 3위였던 선수. 네덜란드 태생으로도 유명하다. 29. 로드 커류 : 미네소타와 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서 모두 영구결번된 선수다. 2루수로 두 팀에서 뛰면서 3000안타를 돌파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우승 반지 빼고 선수로서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타 탔던 스타플레이어다. 34. 커비 퍼켓 : 미네소타 최고의 인기 플레이어. 외야수로서 맹활약하며 팀의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다. 아쉽게도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 이상으로 서른다섯에 조기 은퇴했고, 은퇴 후 못다 한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방황하다가 2006년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36. 짐 카트 : 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신인 워싱턴 세네터스와 뒤를 이은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1959~1973년의 기간에 활약한 투수이다. 통산 283승 237패, 3.45의 평균자책점 및 2461개의 탈삼진, 그리고 16년 연속 골든글러브(1962-77) 기록을 남겼다. 명예의 전당에는 기자의 투표로 입성하지 못하고, 2022년에 명예의 전당 위원회 중 '황금시대(1950~1960년대에 해당하는 시기)' 위원회에 속한 위원 16명 중 75%인 12명의 지지를 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은퇴 후에는 명해설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역대 한국인 선수로는 52. 박병호 : 내야수로서 2016년 ~ 2017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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