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역사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 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고 레드삭스라는 이름은 1908년부터 사용했다. 1903년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과 함께 첫 우승을 한 뒤 1910년대에는 1912, 1915, 1916, 1918년 네 번의 우승을 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베이브 루스는 1915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 시기에는 타자보다는 투수로서 맹활약했다. 1919년 팀이 5할 밑으로 떨어지자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뉴욕 양키스에 베이브 루스를 12만 5000불에 추가적으로 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현금 트레이드한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8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이 시절인 1912년부터 사용했으며 최초의 홈구장이었던 헌팅턴 에비뉴 그라운드는 현재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부지에 있다. 11,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헌팅턴 에비뉴 그라운드는 최초의 월드시리즈를 개최하였다는 역사적인 장소였지만 잔디가 자라지 않는 외야와 너무 깊은 센터 필드 외야 (160m) 때문에 팀은 이전 후 철거를 결정한다. 당시 부지인 월드시리즈 웨이 부근은 현재 체육관을 비롯하여 노스이스턴 대학의 부지로 사용 중이지만 사이 영 의 동상이나 홈플레이트, 폴대를 알리는 명판 등 당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양키스는 루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레드삭스로부터 주축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 양키스는 1920년대 이후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에 등극하게 되지만,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 트레이드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버금가는 암흑기를 가졌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6년 연속 AL 최하위를 포함, 15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이라는 비참한 성적을 냈다. 참고로 15년 이상으로 연속 5할 미만 승률을 기록한 구단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4개밖에 없다. 팀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타격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와 함께 팀은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항상 양키스에 막혀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기간에는 그가 참전하였고, 그에 따라 팀의 성적은 하락했다. 윌리엄스의 선수 시절 동안 리그 1위를 한 것은 1946년 단 한 번. 이때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승 2패까지 올렸으나 6차전과 7차전을 내리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한다. 194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역사상 최초로 열린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패했다. 1949년에는 또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패했다. 상대는 뉴욕 양키스였다. 1975년에는 빅 레드 머신으로 통하던 신시내티 레즈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 7차전에서 보스턴은 3:0으로 앞섰지만 6회에 토니 페레즈의 2점 홈런, 7회 피트 로즈의 동점타, 9회 조 모건의 결승타가 터지면서 7차전 경기 3:4, 월드시리즈 전적도 3:4로 다시 무릎을 꿇고 만다. 1978년에는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의 타이브레이커로 유명하다. 초반에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무려 13게임 차로 뉴욕 양키스를 따돌렸지만, 결국 다 따라 잡히고 162번째 경기에서 99승 63패로 동률이 되었다. 그리고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지면서 양키스에게 지구 우승 타이틀을 내줬다. 그리고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1980년대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타자 웨이드 보그스, 짐 라이스, 드와이트 에반스, 마이크 그린웰과 투수 로저 클레멘스다. 그리하여 1986년에 다시 월드시리즈에 나왔고 이번 상대는 뉴욕 메츠.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언급되기 시작된 것부터 이때부터이다. 이후 7차전도 패하면서 다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하게 된다. 1998년과 1999년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오른다. 하지만 1998년에는 디비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힘으로 1차전만 승리하고 3 연패하며 막혔고, 1999년에는 클리블랜드에게 거의 탈락했다가 5차전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캐리로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하면서 무너진다. 이때 보스턴은 페드로 선발경기 외 나머지 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시리즈를 내줬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9년 정규 포스트 시즌에서 17이닝 0 실점 5 피안타라는 기록을 찍었다. 마침 몇 년 전부터 양키스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지구 1위를 독식하고 보스턴이 이에 도전하는 구도가 짜인다. 이후 2000년에는 트레이드로 유망주 애덤 에버렛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내주고 호타준족 중견수 칼 에버렛을 받아오고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신화적인 활약을 했지만 지구 2위에 와일드카드는 실패하였다. 2001년에는 8년 계약으로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를 데려왔지만, 페드로가 부상으로 18경기 선발에 그치고 노마도 부상당했으며 칼 에버렛은 역시 리그 최악의 악동답게 팀 내 다른 선수들과 충돌하며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노모 히데오가 깜짝 활약으로 부활하여 13승을 했으나 팀은 5할을 간신히 넘는 데 그친다. 2002 시즌에는 데릭 로우의 선발전환이 대성공하였고 21승 8패 2.5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지원했다. 게다가 팀 웨이크필드도 오랜만에 부활하여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63.1이닝으로 규정이닝을 소화하고 11승 5패 2.81의 호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세 명을 갖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했다. 성적이 나아져서 93승을 올리긴 했지만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와일드카드 1위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2004 시즌은 몇몇 타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면서 2003 시즌과 같은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기존 투수들은 더욱 부진하였다. 하지만 총력전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지난 역사 속에 보스턴의 우승 시도를 두 번이나 좌절시켰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맞아 단 한 번도 리드를 허용하지 않고 4:0으로 가볍게 승리하고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깬다. 이런 결과로 인해 이 해 역대 세 번째로 팀 전체가 Sportsman of the year에 선정되었다. 이후 2005 시즌과 2006 시즌은 조금은 부족한 성적을 낸다. 많은 기존 선수들이 FA로 팀을 나갔지만 잡지 않았다. 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유망주 육성에 있었다. 2003년부터 관리된 팜은 2006년부터 조금씩 결과물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2007 시즌에는 이런 유망주들이 자리 잡은 데다가 2006년 부진했던 조시 베켓이 에이스 모드로 돌아오고 마쓰자카와 J.D. 드류 같은 FA도 적절하게 활약하면서 96승으로 지구 우승을 한다. 그리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1승 3패까지 몰렸으나 에이스 베켓이 5차전을 잡고 6-7차전 타선이 폭발하며 힘겹게 승리한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락토버 돌풍의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나 4:0으로 승리하며 잠재운다. 2004년 우승이 단기간에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2007년 우승은 팀에서 키운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2008년에도 어김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지만 하필 만난 상대가 꼴찌팀의 기적이라 불린 탬파베이 레이스였고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2009 시즌에는 양키스에게 8연승 찍고도 1승 9패를 찍으며 겨우겨우 5:5를 맞추었으며 매니가 떠난 빈자리를 메꿔줘야 할 오티즈가 헤매고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온 베이는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애인절스에게 패배하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은커녕 챔피언십 진출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2010 시즌에는 아드리안 벨트레, 마이크 카메론, 제레미 허미다, 존 래키 등을 영입해 비교적 조촐하게 시즌을 시작했던 터라 보스턴 팬들도 그렇고 프런트도 그렇고 이렇다 하게 기대는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레드삭스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케빈 유킬리스와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나란히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실질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성적은 괜찮았다. 같은 지구에 리그 1, 2위인 레이스와 양키스가 있어서 그렇지. 전체 리그 5위, 서부지구 우승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 비해 1승이 모자랐고, 양키스만 없었어도 다른 지구 2위를 모두 이기고 와일드카드로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을 성적이었다. 2020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투수진이다. 2019년 이미 붕괴된 투수진에 마틴 페레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보강은 없었고 다른 팀에서 웨이버 된 투수들을 영입하며 기회를 잡으려고 했지만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그나마 제 몫을 해주던 마무리 투수 브랜든 워크맨마저 필리스로 트레이드해 보내면서 2020년 기준 팀 투수 전체 fwar 최하위이자 유일하게 음수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 되었다. 2021년 이 시즌도 버리는 시즌으로 예상되었으나, 이적생 키케 에르난데스, 헌터 렌프로, 카일 슈와버의 활약과 잰더 보가츠, 네이선 이볼디, 라파엘 데버스 등 기존 선수들의 활약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등 탑독으로 평가받는 강팀들을 연파했고 2021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4차전 8회까진 상대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으나 역전패를 당한 끝에 5,6차전에서도 연패를 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과정이 다소 아쉬울 뿐 생각지도 못한 가을야구였기에 보스턴 팬들에겐 기대 이상의 시즌이었다. 2022년 시즌 162경기 78승 84패 0.481 지구 꼴찌를 기록한다. 21세기 들어 보스턴의 행보를 보면 2~3년 정도는 리툴링 시즌을 갖지만, 리툴링이 끝나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이 돼서 돌아오곤 하는데 딱 그럴 시기가 왔다. 그러나 2019 시즌 이후 드러누운 크리스 세일의 고액 계약은 여전히 남아있고 팀 차원에서 거포 유망주로 밀어주던 바비 달벡이 좀처럼 터지질 않아서 풀타임도 치르지 못한 트리스톤 카사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등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결국 FA를 선언한 잰더 보가츠를 잡을 수 있느냐와 팀의 최대 약점인 불펜진을 보강할 수 있느냐에 따라 2023 시즌의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경쟁팀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감안하면 스토브 리그를 잘 보낸다 해도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 앞에서 위험요소로 꼽힌 세일 혹은 달벡, 아니면 새파랗게 어린 유망주 카사스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팀 차원에서 결단이 내려질 것이다. 2023년 1월 4일, 초대형 계약으로 라파엘 데버스를 지키는 데에 성공했다. 오프시즌 동안 돈을 안 쓰는 건 아닌데 너무 이상하게 쓴다는 평을 받으며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레드삭스지만 우선 팀의 중심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개요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연고를 두고 있는 MLB의 프로야구단이며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으로 연고지는 보스턴이다. 보스턴 아메리칸 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해 1908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팀명을 변경했다. 1901년 아메리칸 리그의 8개 프랜차이즈 팀 중 하나로 창단되었으며, 1912년부터 펜웨이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레드삭스’(Red Sox)라는 팀명은 1908년 경 구단주인 존 테일러가 지은 것이며, 이전의 보스턴 팀은 ‘레드스타킹스’가 있었다. 월드 시리즈 9회 우승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출범 당시 주요 팀 중 하나였고, 1903년 월드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꺾고 첫 우승을 하였으며, 1918년까지 4번 더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후 레드삭스는 야구 역사상 가장 긴 우승 가뭄에 시달리는데, 이는 1918년 베이브 루스를 라이벌 팀인 뉴욕 양키스에 이적시킨 후 시작된 ‘밤비노의 저주’ 때문으로, 2004년 6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기까지 8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1946년 ‘에노스 슬라우터의 매드 대시’(Enos Slaughter's mad dash), 1967년의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 1975년 ‘칼튼 피스크의 홈런’(Carlton Fisk's home run), 그리고 1986년 ‘빌 버크너의 실책’(Bill Buckner's error)과 같은 월드 시리즈에서의 몇몇 사건을 통해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는 해프닝들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레드삭스의 역사는 뉴욕 양키스와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북미 프로 스포츠계에서 가장 역사적이면서 격렬한 관계이다. 2003년부터 레드삭스는 지속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있으며, 월드 시리즈를 3회 우승하면서 최근 10년 간 가장 성공적인 MLB 팀 중 하나로 꼽힌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는 펜웨이 스포츠 그룹의 소유이다. 레드삭스는 MLB 평균 원정 관중이 가장 높은 팀이지만, 펜웨이 파크의 적은 관중 수용 인원은 홈, 원정 전체 평균 관중 수가 증가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5월 15일 이후의 모든 홈경기는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9년째 이어지는 기록으로, MLB 신기록이기도 하다.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아메리칸 리그 우승 14회, 동부지구 우승 10회의 명문 구단이지만 희대의 라이벌뉴욕 양키스에 비해서는 월드 시리즈 우승 횟수가 적은 편이다. 1920년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후 80년 넘게 월드 시리즈 우승과 멀어지면서 밤비노의 저주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00년대 초, 존 헨리 구단주가 들어오면서 테오 엡스타인 단장을 임명한 후 팀이 각성하였고, 드디어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결국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냈다. 이후 2007년과 2013년, 2018년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21세기 최초의 월드 시리즈 4회 우승팀에 등극했다. 2022년 현재 포브스에서 발표한 구단 가치는 30개 팀 중 3위. 2위 LA 다저스와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2위 싸움을 하고 있다.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는 100년 넘게 라이벌 관계를 이어 오면서 프로 스포츠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며, 격렬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이는 종종 미국 북동부의 화젯거리로 다뤄지는데, 디비전 시리즈에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두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세 번 맞닥뜨렸고, 양키스가 1999년과 2003년 두 번 우승하였으며, 레드삭스는 2004년에 한 번 우승하였다. 또한 리그 우승 타이틀을 두고 두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1904년에는 레드삭스가 우승하였고, 1949년에는 양키스가 우승하였다. 팀 명칭인 레드삭스(Red Sox)는 1907년 시즌 종료 후 당시 구단주이던 존 테일러가 선수들의 유니폼을 빨간색을 입게 한 것에서 유래하여 지어졌다. 1876년 내셔널 리그가 출범하고, 신시내티에 새로운 야구팀이 생기면서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라는 명칭을 정식 등록하게 되자 보스턴의 팀은 ‘레드캡스’(Red Caps)라는 명칭을 이용하는 것을 권고받는다. 후에 이들은 ‘브레이브스’(Braves)로 명칭을 바꾸는데, 결국 브레이브스는 보스턴에서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였고 다시 한번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로 이전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되었다. 1901년 아메리칸 리그가 출범하고, 보스턴에는 아메리칸 리그 소속으로 새로운 야구팀이 창단되었는데, 창단 후 7년 동안 그들은 ‘파란색 스타킹’을 착용하였고, 공식적인 팀 명칭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간단하게 ‘보스턴’(Boston), ‘보스터니언스’(Bostonians) 혹은 ‘보스턴스’(Bostons)라 불리거나, 내셔널 리그 보스턴 팀(전 보스턴 레드스타킹스)과 구별하기 위해 아메리칸 리그 소속이었던 이들을 ‘아메리칸스’(Americans) 혹은 ‘보스턴 아메리칸스’(Boston Americans), ‘아메리칸 리거스’(American Leaguers)라 불렀다. 이 시기의 유니폼은 ‘보스턴’(Boston)을 상징하는 ‘B’와 ‘아메리칸스’(Americans)를 상징하는 ‘A’를 크게 써서 입었던 1902년은 제외하고, 1901년부터 1907년까지 홈 어웨이 모두 간단하게 ‘Boston’이라 적힌 것을 입었다. 신문 기자들은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서머싯스’(Somersets)(찰스 서머스 구단주에서 인용), ‘플리머스 록스’(Plymouth Rocks), ‘베니터스’(Beaneaters), ‘콜린시트스’(Collinsites)(지미 콜린스 구단주에서 인용), 그리고 ‘필그림스’(Pilgrims)가 그 예이다. 몇 년 동안 아메리칸 리그 보스턴 팀의 공싱적인 명칭은 ‘필그림스’라 사용되었지만, 존 테일러 구단주는 1907년 11월 필그림스는 “집 없는 떠돌이와 같은 인상을 준다”라고 말했고, 당시 내셔널 리그 보스턴 팀은 여전히 빨간색 계열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 ‘레드스타킹스’라 불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내셔널 리그 보스턴 팀은 유니폼을 전부 흰색으로 변경하였는데, 이 기회를 틈타 1907년 11월 18일 존 테일러 구단주는 팀의 새로운 색상을 빨간색이라고 발표하며 1908년부터 유니폼 앞면에 빨간색 스타킹 모양의 로고를 달게 하였다. 이로 인해 1908년 내셔널 리그 보스턴 팀은 다시 빨간색 계열의 유니폼을 채택하긴 하였지만, 결국 아메리칸 리그 보스턴 팀이 ‘레드삭스’(Red Sox)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된다. 펜웨이 파크를 사용하기 전 레드삭스는 1901년부터 1911년까지 헌팅턴 애비뉴 그라운즈를 사용했다. 1912년 개장한 펜웨이 파크는 현재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와 함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장이다. 펜웨이 파크에서의 첫 경기는 1912년 4월 20일 뉴욕 하이랜더스에 11이닝까지 가서 7-6으로 이긴 경기이며, 이날 시구는 시장인 존 F. 피츠제럴드가 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신문에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 소식으로 인하여 큰 이슈를 얻지는 못하였다. 펜웨이 파크는 수많은 재건축과 증축을 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계획과 구상을 가지고 실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라이앵글’이나 ‘페스키 폴’ 그리고 외야 좌측에 유명한 ‘그린 몬스터’와 같은 다소 독특하면서도 변덕스러운 특징들을 갖고 있다. 레드삭스는 2003년 5월 15일 이래로 매 경기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데, 2008년에는 456경기 연속 매진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신기록을 달성하여 이날 행사를 통해 입장 관중들에게 기념 선물을 증정하기도 했다. 2012년 7월 17일 76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뿐만 아니라 미국 스포츠 역사에 큰 이정표를 찍게 되는 것이었다. 현재 주간에는 37,067명, 야간에는 37,495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2013년 10월 31일, 월드시리즈에서 95년 만에 팀이 홈에서 우승하는 기이한 기록을 남겼다. 홈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목 주변에서부터 앞면의 단추 가림 덧단을 타고 아래까지 빨간색의 띠가 이어져있으며, ‘RED SOX’라고 빨간색 바탕에 파란색 테두리의 글씨가 쓰여있다. 이 유니폼은 1979년부터 현재까지 입어오고 있으며, 유니폼 뒷면에는 등번호만 있지 선수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모자는 남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장식된 ‘B’가 쓰여있는 것을 착용한다. 1970년대에 잠시 모자가 빨간색으로 변경된 적은 있지만, 남색 모자는 계속해서 레드삭스의 상징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호세 알렉산더 "알렉스" 코라 :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으로 1993년 드래프트 때 미네소타 트윈스에 12라운드 지명됐지만 마이애미 대학교에 진학했다. 1996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코라를 당시 대학 야구선수 중 최고의 수비수로 선정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했다. 1998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였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자리를 잡으며 이때부터 한국 야구팬들은 코라를 박찬호의 동료로 기억하게 된다. 내야수, 그중에서도 유격수로 활동하였다. 주로 7,8번의 하위 타순에 배치되는 선수였으며, 수비는 매우 좋았지만 방망이 실력은 좋지 못한 그저 그런 선수였다. 14년간 선수 시절 동안 그냥 평범한 선수였다. 데뷔 초반 LA 다저스 시절에는 거의 주전 유격수 급으로 활동하며 많이 출전했으나 늘 타격성적이 부진했고, 2005년 다저스를 떠난 이후에는 많아야 200-300타석 정도 나오는 메인 백업으로 주로 활동했다. 2007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일 때 한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다. 14년 동안 6팀을 전전하면서도 메이저리그에서 준주전급으로 계속 활약할 정도는 되었을 실력이었으며 2011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뛰고 2012년에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스프링 캠프 도중 방출당하며 은퇴를 하였다. 은퇴 후 2013년부터 4년간 ESPN에서 해설가로 활동했고,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벤치코치로 있다가 2017 시즌 종료 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팀을 단숨에 MLB 최강팀으로 만들어냈다. 감독 첫해에 팀을 월드 시리즈에 올렸고, 전년도에 코치로 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이어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이 되고 2년 연속으로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2022 시즌에는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해 팀의 에너지 레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꼴찌로 마감했다. 2021 시즌이 운이 좋았던 것은 구단 관계자들도 알고 팬들도 알고, 코라 감독 본인도 알고 있었을 테니 크게 실망하는 반응은 없다. 구단 측도 계약 연장 옵션을 실행하며 2023 시즌도 보스턴과 함께 하게 되었다. 알렉스 코라에 대한 보스턴 팬들의 여론은 호의적이다. 그나마도 2022 시즌 중반 이후 갑작스러운 폭락을 겪으며 인기가 다소 시들해진 것이지, 2021 시즌까지만 해도 리툴링 중인 팀을 이끌고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가면서 4차전 9회까지는 한 수 위 전력인 휴스턴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코라가 단기전에서 강한 이유를 변칙적인 투수 운용에 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단순히 벌떼 전술을 잘 쓸 뿐만 아니라 2018 월드 시리즈 3차전의 네이선 이볼디, 2021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의 닉 피베타처럼 시리즈의 승부처에서는 믿을 만한 선발 투수를 중도에 투입하여 연장 승부에서 물러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보스턴은 영구결번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원래는 10년 이상 보스턴에서 선수/감독으로 있었어야 했으며, 은퇴를 보스턴에서 해야 하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재키 로빈슨의 전 구단 영구결번이 선포된 1997년까지 바비 도어, 조 크로닌, 칼 야스트렘스키, 테드 윌리엄스 단 4명만이 영구결번이 되었다.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은퇴한 칼튼 피스크가 2000년에 영구결번이 되면서 '은퇴를 보스턴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은 깨졌으며, 자니 페스키가 2008년 영구결번 되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도 굳이 필요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거기에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레드삭스에서 7 시즌을 뛰었으니 10년 이상 선수/감독 조건도 완화됐다.
1. 바비 도어: 2루수로서 보스턴에서만 15년을 뛰면서 활약했던 선수. 1986년 베테랑 위원회의 결정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타격 성적은 평범한 편이지만, 좋은 수비력을 가졌던 선수. 1918년 4월생으로 2017년 11월에 타계. 향년 99세. 타계 전까지 마지막으로 남았었던 1930년대 야구선수. 4. 조 크로닌: 1935~1945년까지 보스턴에서 활약했는데, 준수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유격수였다. 영입 시부터 감독을 겸직해 은퇴 2년 후인 1947년까지 재직한 후, 뒤이어 1959년까지 단장까지 역임해 팀에 헌신했으나 톰 요키(1903~1976) 구단주처럼 지독한 인종주의자라 보스턴의 흑인 선수의 영입이 가장 늦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덕분에 놓친 선수가 저 유명한 호타준족의 상징 윌리 메이스. 그거 아니었으면 밤비노의 저주는 진작 깼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영구결번. 1984년 9월 7일 77세의 나이로 매사추세츠에서 타계하였다.
6. 자니페스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않았음에도 영구결번을 준 최초의 선수. 1940년대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다만, 1946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평범한 안타를 송구 받아 잠시 방심하는 사이 세인트루이스의 1루 주자 에노스 슬로터의 질주로 결승점을 내준 사건으로 인해 두고두고 욕먹기도 했다. 이후 1963년~1964년과 1980년 레드삭스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4년 극적인 우승 이후, 60년 가깝게 비난한 것이 맘에 걸렸는지 우측 파울 폴대를 페스키 폴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 영구결번까지 주면서 과거 밑도 끝도 없는 비난에 대해 사죄한 듯. 2012년 8월 13일 93세를 일기로 매사추세츠의 단버스에서 타계하였다. 8. 칼 야스트렘스키: 1960~70년대 타자들의 암흑기에 레드삭스 타선을 이끈 최고의 타자이며 바로 뒷번호에 영구결번 된 테드 윌리엄스의 후계자. 미겔 카브레라가 2012년에 달성할 때까지 MLB 최후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였다. 타격 실력도 뛰어났고, 훌륭한 성품을 가진 선수라서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23년간 레드삭스에서만 뛰며 통산 452 홈런 3419안타를 기록했으며, 그린 몬스터 때문에 절대 수비가 쉽지 않은 펜웨이 파크의 좌익수로서 7번의 골드글러브를 차지했을 정도로 수비도 빼어났다. 레드삭스 역대 최초의 공식 캡틴. 9. 테드 윌리엄스: 타격의 신.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으로 한창 전성기였던 5년의 세월을 날리고도 통산 타율 0.344, 521 홈런 2654안타, 1839타점이란 대기록을 남겼다. 특히 통산 출루율에서는 그 베이브 루스를 앞서는 유일한 타자다. 14. 짐 라이스: 최악의 투고타저 시기인 1970년대에 활약한 강타자. 통산 382 홈런 2452안타를 기록했다. 1978년 리그 MVP를 기록했고, 2010년 15번째 마지막 투표에서 간신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야즈의 뒤를 잇는 레드삭스 제2대 캡틴. 26. 웨이드 보그스: 19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했던 출루 머신. 총 5번의 아메리칸 리그 수위타자와 6번의 아메리칸 리그 최고 출루율을 기록했으며, 그중 4년 연속 수위타자, 5년 연속 최고 출루율을 달성하며 출루 능력 하나만큼은 역대급 선수. 더불어 3000안타 마일스톤을 최초로 홈런을 기록한 선수이며 2005년 명예의 전당에 첫 턴 입성에 성공했다. 레드삭스의 철천지 원쑤인 뉴욕 양키스에 제 발로 간 경력이 있어서 레드삭스에서의 영구결번은 사실상 받기 힘들어 보였으나 2015년 12월 21일, 레드삭스가 보그스의 26번을 영구결번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7. 칼튼 피스크: 보스턴에서 포수로 활약하며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이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가서 더 원숙한 기량을 선보였으며, 신인 시절부터 양키스의 캡틴 서먼 먼슨과의 맞짱 등 미친 존재감과 리더십으로 현지 올드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커맨더(Commander)로 익숙하다. 그래서 두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화이트삭스에서는 72번)되었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MLB 역대급의 포수다. 비록 선수로서는 시카고에서 은퇴했지만 보스턴에 돌아가 프런트로 재직하고 명예의 전당에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입성한 인연을 들어 영구결번 시켜줬다. 34. 데이비드 오티즈: 21세기 보스턴 최고의 스타. 비록 이적생 출신이긴 하나 14년간 보스턴의 강타자 및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맹활약했으며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을 포함하여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하나, 약물 복용자라는 어둠도 존재한다. 또한 약물 복용이 확인된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자이기도 하다. 42. 재키 로빈슨: 전 구단 영구결번. 45. 페드로 마르티네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성기를 보낸 선수로, 명실상부 현대 야구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2000년 조정 평균자책점(ERA+)이 291로 단연 1위다. 뿐만 아니라 양키스와의 라이벌리로도 굉장히 유명한 선수이다. 추가적으로 현재 15번(더스틴 페드로이아), 21번(로저 클레멘스), 33번(제이슨 배리텍), 49번(팀 웨이크필드)은 영구결번 선포만 안 했을 뿐이지 사실상의 비공식 영구결번으로서 더 이상 지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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