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 삭스 구단의 역사
화이트삭스의 전신은 세인트 폴에 연고지를 두었던 세인트 폴 세인츠라는 구단이다. 1901년에 아메리칸 리그가 창설되고 연고지를 시카고로 옮기며 메이저 리그에 가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리그에 가맹했던 보스턴 레드스타킹스에 대항하여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더구나 이미 시카고에는 내셔널 리그 소속의 시카고 오펀스가 존재하고 있었고, 1874년부터 1889년까지는 같은 이름인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화이트스타킹스의 첫 번째 구단주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에서 선수시절을 보냈으며, 아메리칸 리그 창설에도 온 힘을 다한 찰스 코미스키가 했다. 감독으로는 전년까지 시카고 오펀스에서 투수를 하고 있었던 클라크 그리피스를 선수 겸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그리피스는 24승을 올리는 등 자신도 활약을 하며 화이트스타킹스는 창단 첫 해부터 우승을 차지한다. 또, 이때부터 지역지인 시카고 트리뷴이 지면에 화이트삭스라고 간략해서 게재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팀명을 화이트삭스로 바꾸게 된다.
1906년에는 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에드 월시로 시작해 도크 화이트, 닉 알트록 등 강력한 투수진을 형성하여. 230이라는 엄청나게 낮은 팀타율을 기록하고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와 대결했다. 이 해의 시카고 컵스는 메이저 리그기록인 팀 116승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함을 뽐냈으며, 시카고 컵스가 우승할 거라는 예상이 한결같았다. 하지만, 시리즈가 시작되고 1차전에서는 알트록이, 3차전에서는 왈시가 컵스의 타선을 억눌르고, 6차전에서는 컵스의 에이스였던 모데카이 브라운을 상대로 맹타를 휘두르면서 4승 2패로 화이트삭스가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1918년에는 6위를 하며 낮은 순위를 기록하지만, 다음 해인1919년에는 88승 52패를 기록하며 4번째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19년에 일어난 '블랙삭스 사건'으로 8명의 영구제명 선수가 나오면서 화이트삭스는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베이브 루스를 영입한 뉴욕 양키스가 아메리칸 리그의 맹주로서 군림하게 되며 화이트삭스는 하위권을 맴돈다. 1930년대 후반을 제외하고는 승률 5할을 상회하는 일도 드물게 되었으며, 동 시기에 부진을 겪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의 최하위 경쟁을 계속했다. 그 사이 통산 260승을 기록한 테드 라이온스나 유격수로서 시즌 최고 타율인. 388을 기록한 루크 애플링 같은 유명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1950년대까지는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1951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부터 미니 미노소를 영입한다. 화이트삭스의 첫 번째흑인 선수였다. 미노소는 호타준족인 외야수로서 활약했으며, 1964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1973년(53세)과 1980년(58세)에 2번이나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 그로 인해메이저 리그 역사상 2번째로 5개의 연대를 활약한 선수가 된다. 1950년에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부터 넬리 폭스를 영입했으며, 1956년에는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리그 최고 수준의 키스톤 콤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들의 견실한 수비와 기동력을 중시한 야구로 점차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1957년에는 알 로페즈가 감독으로 취임한다. 1959년에는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56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특유의 기동력이 작렬했으며, 투수진에서는 39살인 얼리 윈이 22승을 올리며 사이 영 상을 타는 등, 투타가 양면에서 활약하는 시즌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화이트삭스는 94승 60패를 기록하며 4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월드 시리즈에서는 아깝게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지고 만다.
그 후, 상위권 경쟁을 계속했지만 리그우승은 하지 못했다. 1964년에는 뉴욕 양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격렬한 1위 경쟁을 펼쳤지만, 1 게임차로뉴욕 양키스에게 밀렸다. 또, 1967년에는 4개의 구단이 펼친 우승경쟁에서도 밀렸다. 1975년에 화이트삭스도 시애틀로의 연고지 이전을 계획했지만 빌 비크가 팀을 매수하여 없던 일이 되었다. 비크는 1959년에도 한번 팀을 매수하여 3년간 구단주를 한 경험이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줄어든 관중수를 되돌리려고 했다. 1981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칼튼 피스크를 데려왔으며, 라마 호이트와 해롤드 베인즈 같은 젊은 선수들이 대두되기 시작하며 1983년에는 처음으로 지구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패배하면서 리그우승은 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1990년까지 승률 5할을 밑도는 시즌이 계속되었으며 탬파베이 이전설이 제기됐으나 이 또한 불발됐다. 1990년에 후에 빅허트라고 불릴 프랭크 토마스가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면서 전년도에 최하위를 기록했던 화이트삭스는 2위로 순위가 올라간다. 1993년에는 토마스가. 317의 타율과 41개의 홈런, 128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하고, 잭 맥도웰이 22승을 거두며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에 힘입어 2번째로 지구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그 해에 월드 시리즈우승을 하게 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2승 4패로 패하고 만다. 다음 해인 1994년에는 새로 만들어진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로 이동하게 되고, 다시 한번 지구 우승을 달성하지만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서 일어난 메이저 리그 선수 파업에 의해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열리지 않았다. 1997년에는 알버트 벨을 영입하며 토마스와 함께 괴물 같은 중심타선을 형성했다. 이 둘은 2년간 143개의 홈런과 502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다른 구단의 투수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줬지만 2명의 콤비는 2년밖에 가지 못했다. 1999년에는 부진을 겪고 있는 토마스를 대신해서 신시내티 레즈에서 이적해 온 폴 코너코와 화이트삭스에서 뛰고 있던 매글리오 오도네즈, 카를로스 리같은 젊은 선수들이 활약한다. 하지만, 승률 5할로 2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괴물 같은 페이스로 1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디언스와 화이트삭스가 경기수에서 21.5경기가 차이 난 것을 보면 어느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에는 토마스가 부활하여. 328의 타율과 43개의 홈런, 143개의 타점을 올리며 실버슬러거와 컴백 상을 수상한다. 이번 시즌은 토마스와 오도네즈의 활약에 힘입어 3번째로 지구 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만다. 그 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지구 1위 자리를 내주며 화이트삭스는 3 시즌 연속으로 2위에 머문다. 2003년에는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2.90의 방어율에 21승 9패, 207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탈삼진 타이틀을 따낸다. 하지만, 2004년에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에 로아이자를 뉴욕 양키스로 호세 콘트레라스와 트레이드한다. 2005년에는 2004년에 감독으로 취임된 아지 기옌감독 아래 저메인 다이, 이구치 타다히토, 스콧 포드세드닉이 새로 들어오면서 이들이 중심인물이 되어 그때까지 해왔던 한방을 치는 야구가 아닌 스몰볼을 표방한 야구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홈런이나 득점의 수는 줄었지만 기동력이나 수비력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개막전부터 독주를 시작하였고, 시즌이 끝나갈 무렵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추격을 당했지만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4번째 지구 우승을 달성한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2004년 월드 시리즈우승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만나서 3연승을 거둔다. 계속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만나서 4승 1패로 이기며 팀 역사상 6번째로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그리고 46년 만에 출장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만나서 4연승을 거두며 1917년이래 88년 만에 비원의 월드 시리즈우승을 달성한다. 이것은 2004년에 깨졌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에 의한 86년 만의 우승에 이어서 화이트삭스도 88년 만에 블랙삭스의 저주를 깨고 월드 시리즈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2006년부터 이후 짝수해는 5할 이상, 홀수해는 5할 미만을 기록하는 롤러코스터 성적을 내고 있다. 팀이 거의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권에 있다 보니 즉시 전력감의 선수를 데려오다 보니 그 대가로 유망주를 상대에게 내주고 투자에 비해 팀 성적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제이크 피비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WS 우승에 도전했으나, 피비가 이전의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데다가 다른 투수도 그저 그런 활약을 보이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그나마 중부 지구 2위에 올랐다. 그래도 워낙 좋은 투수가 많은 팀이라 2011년에 반등이 가능하다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으며 에드윈 잭슨이 애리조나에서 트레이드된 뒤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며, 마크 벌리는 언제나 제 몫은 하는 투수다. 제이크 피비도 클래스가 확실한 투수이며, 개빈 플로이드와 존 댕크스도 믿을 수 있는 영건 투수이다. 가장 고른 활약을 보일 선발투수진이라면 시카고 화이트삭스라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타선의 중심인 폴 코너코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대에 못 미쳤던 고든 베컴 등의 타자가 기대치만큼만 성장해 준다면 2011 시즌에는 플레이오프를 노릴 수 있는 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심타선이 모두 터지질 않고 최악의 시즌을 보낸다. 2012년 시즌이 시작되자 반전이 일어났다. 시즌 막판까지는 지구 선두자리를 고수했지만, 같은 지구 팀들끼리의 맞대결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8월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치고 올라오면서 맞물린 팀의 하향세 때문에 선두자리를 빼앗겼고 이어진 와일드카드 싸움에서도 탈락하며, 익숙한 자리인 지구 2위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되돌아갔다. 2014년 화이트삭스의 전통적인 전략은 선수들을 키우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쉬어갈 때도 그들은 즉시전력에 가까운 유망주들을 트레이드로 데려오거나 쿠바 등 해외파 선수들을 활발하게 이용했다. 아니면 논텐더나 웨이버를 통해서 쓸만해 보이는 선수를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래프트를 통해서 키워진 선수가 로스터에 제일 적은 팀 중 하나다. 일단 시즌이 진행되면서 의외로 5할 수준에 근접하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투수진은 크리스 세일이 잔부상을 겪긴 했지만 분전했고, 세일과 동갑인 퀸타나가 든든한 2 선발로 호성적을 내주었다. 화이트삭스는 2013 시즌을 망치고, 팀 내 멤버들 상당수를 바꾸는 전환기가 된 2014 시즌을 그럭저럭 선방하면서 마무리했다. 2015 시즌 삭스의 스토브리그는 뜨거움 그 자체였다. FA 시장에서 망한 유망주에서 준수한 불펜으로 돌아온 잭 듀크와 3년, 2012년 골든글러브 출신 1루수 애덤 라로쉬와 2년에 계약한 데 이어, 오클랜드에 내야수 마커스 세미엔과 우완투수 크리스 베싯을 내주고 제프 사마자를 영입, 확실한 원-투 펀치를 가지게 되었고,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 이후 올 시즌 양키스의 마무리를 맡았던 데이비드 로버트슨과 4년에 계약하여 뒷문을 책임질 마무리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팀의 전반기 성적은 41승 44패로 저조하였으며 76승 86패의 성적으로 지구 4위에 랭크하며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2017년 시즌 시작 후 팀의 선발들이 괜찮은 활약을 해주었고, 불펜의 위력 덕분에 생각보다 성적이 괜찮게 나왔다. 하지만 팀의 주력 선수들의 많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8월에는 기어코 클리파드까지 휴스턴으로 보내면서 필승조가 완전히 해체되었다. 작년 말부터 이루어진 수많은 트레이드에서 받아온 유망주들 중 기대대로 성장하고 있는 선수는 코팩, 히메네즈 둘 뿐이다. 같은 지구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제치고 지구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2018년 시즌 때 최종 성적은 정확하게 62승 100패를 하고 단일 시즌 1,572 삼진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삼진 허용 기록을 경신하고 말았다. 2019년 시즌 때 팀 성적도 충격적인 100패 시즌을 기록했던 작년과 달리 72승 89패로 소폭 끌어올리며 AL 중부지구 3위를 기록했다. 2020 시즌이 들어가기 전부터 스토브리그에서 화이트삭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시즌 초부터 타선이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투수진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준 결과로 9월 17일에 AL 첫 번째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으며 12년 만에 가을야구로 향하게 되었다. 다만 이후 신시내티와의 3연전에서 루징을 당하고 클리블랜드에게 패배를 당하며 1위 자리를 미네소타에게 내주게 된 것이 흠으로 작용되면서 이후 클리블랜드에게 2위 자리까지도 내주며 시즌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상대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만나게 되었다. 1차전에서 지올리토의 7이닝 1 실점 호투와 적절한 타선지원에 힘입어 4대 1로 승리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2~3차전을 내리 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2021년 지난 시즌 성적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는지, 성공적인 리빌딩을 한 릭 렌테리아 감독을 경질하고 포시 우승경험이 있는 감독을 물색 중에 전설적인 감독 토니 라 루사를 선임했다.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감독직에 돌아왔으며, 명예의 전당 감독이 이끄는 팀이라는 엄청난 스펙을 보유하게 되었다. 화이트삭스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더블헤더 1차전에서 7-2로 승리, 86승 66패를 기록하며 지구 2위 클리블랜드를 11.5 게임차로 따돌리고 13년 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포스트시즌 대결 상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과의 디비전시리즈에서 1승 3패를 기록하게 되면서 이번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023년 시즌 막바지인 10월 3일에 건강 문제로 결장 중이던 토니 라 루사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다. 21 시즌에 큰 성공을 보이고 압도적인 기대를 받으며 쟁쟁한 우승 후보까지로도 점쳐지던 22 시즌을 망치면서 팀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 않아 졌다. AL 중부는 물론 MLB 전체에서 봐도 이제는 최하위의 팜 시스템, 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호세 아브레우의 휴스턴으로의 이적, 루카스 지올리토, 엘로이 히메네스, 루이스 로버트 등의 키 플레이어들의 부진 등 많은 악재가 겹쳐지면서 시카고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태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22 시즌 기준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었던 클리블랜드와 미네소타도 눈에 띄는 전력 강화는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클리블랜드야 전통적인 스몰마켓팀에 돈을 잘 안 쓰는 구단으로 유명한 것도 있고, 미네소타는 죽어가던 팀에 그나마 생기를 불어주던 카를로스 코레아가 계약이 만료되어 메츠로 이적을 하게 되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무산되며 트윈스에 잔류했다. 좌우지간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AL 중부에서 확실한 전력 강화를 이루어낸 팀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MLB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 소속의 프로야구단으로 연고지는 시카고인데, 같은 지역의 시카고 컵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시카고 도시 구조 탓에 컵스가 시카고 북쪽의 고소득층 백인들을 팬층으로 삼게 된 반면 시카고 남부의 화이트삭스는 흑인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 팬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이트삭스는 1917년 우승한 이후 88년 만에 2005년에 세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서 오랫동안 쌓였던 한을 풀었지만, 컵스는 11년이 더 지난 2016년이 돼서야 저주를 풀고 1908년 이후 108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내셔널 리그 소속인 시카고 컵스의 연고지도 화이트 삭스와 같은 시카고이다. 화이트 삭스는 1901년 화이트 스타킹스라는 구단 명으로 창단하여 1904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6년과 1917년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이 발생한 이후부터 88년 동안 우승을 못 하다가 2005년 월드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4연승을 거두고 8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1901년에 있었던 아메리칸 리그 창단 당시부터 존재하는 유서 깊은 구단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3회, 리그 우승은 6회, 지구 우승은 5회를 했다. 1919년에 있었던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8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2005년에 있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4연승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는 시카고 컵스와 자주 비교되지만, 인기면에서는 컵스에게 밀린다. 컵스는 시카고 시의 북부(노스사이드), 화이트삭스는 시카고 시의 남부(사우스사이드)에서의 인기가 특히 높다. 홈구장 주변이 폴란드계 미국인이 많다는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 폴란드계 미국인 선수를 잘 뽑는 경향이 있다. 홈구장인 U.S. 셀룰러 필드가 홈런이 나오기 쉬운 구장이라 장타에 의존했지만, 2004년에 취임한 아지 기옌 감독에 의해 스몰볼의 형식을 띠기도 했다. 1990년 7월 11일에 있었던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1917년 당시의 유니폼을 착용하여 경기를 치렀다. 예상외로 호평을 받아서 다른 구단도 채용하기 시작했고, 매년 과거의 유니폼을 입고 시합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도 교류전을 중심으로 과거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블랙 삭스 스캔들이라는 최악의 흑역사를 뺀다면 긴 역사동안 특별한 전성기도 침체기도 없이 지내왔다. 122년 역사를 가졌음에도 포스트 시즌 진출은 11번에 그쳤지만, 의외로 통산 승률은 0.503으로 패보다 승이 더 많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페드로 올랜도 그리폴 :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출신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고등학교와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54번째로 프로에 입단을 하게 된다. 여러 팀을 거치면서 2020~2022년에 캔자스시티 로열스 벤치코치를 하면서 마이애미 말린스의 감독 후보군에도 올랐으나 결국 스킵 슈마커가 부임하면서 고배를 마셨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 11월 3일자로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는 총 11개의 영구 결번이 있다. 그중 42번은 최초의 흑인선수로 전구단에 영구 결번되어 있는 재키 로빈슨이며, 가장 최근에 영구 결번 된 번호는 2017년 은퇴를 한 마크 벌리의 56번이다. 2. 넬리 폭스 :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맹활약한 2루수. 명예의 전당 멤버이며, 1959년 화이트 삭스의 아메리칸 리그 우승의 주역이자 그 해 리그 MVP. 올스타 경력 15회. 1975년 12월 1일 볼티모어에서 림프종으로 타계하였다. 3. 해롤드 베인스 : 꾸준한 활약을 펼친 외야수, 지명타자. 통산 2866안타를 기록하고 은퇴했다. 2019년 베테랑위원회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 4. 루크 애플링 : 투수들의 악몽. 엄청난 파울과 볼넷 생산을 자랑하는 최고의 유격수였다. 9. 미니 미요소: 쿠바 출신으로 1950년대 팀 최고의 스타. 특이한 것은 현역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1925년생인데, 무려 2003년에도 독립 리그에서 잠시 선수로 나왔다! 2015년 3월 1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1. 루이스 아파리시오 : 오마 비즈켈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유격수로서 가장 많은 기록의 보유자이며, 2677안타를 친 명예의 전당 멤버. 여담으로 오마 비즈켈이 화이트삭스에서 뛸 때 이 베네수엘라 출신의 대 유격수를 기리기 위해 아파리시오에게 직접 허락을 받아 이 번호를 쓰기도 했다. 14. 폴 코너코 : 2000년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대표하는 강타자이자, 팀의 리더. TKO트리오를 결성해 클린업 트리오이자 프랭크 토마스 이후 화이트삭스 최고의 강타자로 활동했으며 월드시리즈 우승도 2005년 한차례 경험한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16. 테드 라이언스 :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팀에서만 260승을 거둔 투수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팀이 최악의 시기여서 겨우 260승만 거두었다. 선수 생활의 위기를 너클볼로 극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이 분 혼자서 완투승을 236승 거두셨다. 1986년 별세. 19. 빌리 피어스 : 1950년대 팀 최고의 에이스로 1959년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의 주역. 2015년 별세.
35. 프랭크 토머스 : BIG HURT. 1990년대 팀 최고의 스타이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야구 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로 평가받으며, 동시에 스테로이드 사용이 빈번했던 당시 야구계에서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고평가를 받는다. 당대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강타자로, 화이트삭스에서 두 차례 MVP를 수상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56. 마크 벌리 : 2000년대 화이트삭스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 은퇴시즌인 2015년까지 15년 연속 10승, 14년 연속 10승 - 200이닝을 기록한 꾸준함의 대명사. 72. 칼튼 피스크 : 보스턴 레드삭스와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한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포수. 다만 명예의 전당 입성에서는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들어갔다. 이 외에도 현재 비공식적으로 9번과 13번이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현역 선수들 중에선 호세 아브레유의 79번이 그나마 영구 결번 가능성을 논해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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