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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5. 16.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의 모자 로고, 구단 로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의 역사 

1901년 창단하였고, 초기에 연고지는 필라델피아(1901~54)였다. 그러나, 같은 연고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인기면에 밀려나가고 성적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결국 캔자스시티(1955~67)로 연고지를 이전했으나, 필라델피아 때처럼 동일 연고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있어 비인기팀과 동시에 팀 성적이 하위권에 맴돌았다. 1968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1968~현재)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이에 앞서 루이빌 이동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1995년까지 구단주 윌터 하스 주니어의 투자에 힘입어 이 시기 동안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팀이 되었는데 1985년 인디애나폴리스 이동설이 있었고 그 당시 팀명은 '애로우즈'였지만 근처 신시내티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지역 클럽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윌터 하스 주니어가 사망하자, 오클랜드는 가난한 구단이 되었다. 하지만 1998년 빌리 빈이 단장이 된 지 2년 후인 2000년대 이후로 거의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면모를 보였다. 특히 2002년에는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갔지만 103승으로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하고 아메리칸 리그 최다 연승인 20연승을 하였다.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패하고 만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는 필라델피아 연고지 시절부터 라이벌 관계이다. 또한 이 구단은 같은 캘리포니아주를 연고로 하는 LA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비해 비교적 비인기팀이다. 코끼리를 팀의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아메리칸 리그 창립 멤버이기도 한 이 팀은 리그에서 가장 꼴찌를 많이 한 팀이기도 하나, 아메리칸 리그에서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리그 우승(15), 월드 시리즈 우승(9)이 많은 팀이기도 하다. 양키스(36~39, 49~53, 98~00)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3 연속 우승(72~74)을 달성한 팀이기도 하다. 연고지 오클랜드의 시장성이 나쁜 탓에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얼마 없지만 그 대신 캣피시 헌터, 마크 맥과이어, 호세 칸세코, 제이슨 지암비, 배리 지토, 팀 허드슨, 마크 멀더 등의 우수한 선수들을 언제든지 배출할 수 있는 압도적인 육성 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라이벌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는 서로 만 하나를 두고로 마주 보고 있는데, 자이언츠와 애슬레틱스의 대결은 일명 '베이브리지 시리즈'로 유명하다. 특히 1989년 월드시리즈에서는 이 두 팀이 붙어서 에이스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그 해 월드시리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더 크게 기억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리그 3연패 하던 시절에는 옆동네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연고지 이전을 고려할 정도로 관중동원도 잘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오클랜드 시측과 잠시 마찰을 빚어서 로스앤젤레스로 튀었던 NFL 팀 레이더스가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오면서 암운이 드리워지게 된다. 원래 레이더스는 오클랜드 시절에 슈퍼볼을 2번이나 제패한 명문팀이어서 로스앤젤레스로 튄 이후에도 10년이 넘는 동안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레이더스가 다시 오클랜드로 복귀함과 동시에 애슬레틱스는 오클랜드 콜리시엄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게다가 레이더스의 복귀와 더불어 구장을 다시 풋볼을 하기 좋게 개조를 해 버리는가 하면 우선 세입자의 권리를 레이더스에게 줘버리는 등 애슬레틱스를 완전히 서자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잘 나갔던 시절에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중하위권을 맴돌던 오클랜드의 시장성도 에이스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꾸역꾸역 유지해 오던 관중유치가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끝내주게 나빠지게 된 것. 그 까닭에 구단수익이 적다 보니 별 수 없이 빌리 빈 단장은 비싼 FA 지를 바에야 다른 구단에서 버린 퇴물을 영입하거나, 유망주를 적당히 쓰다가 서비스타임 이후 연봉조정/FA 자격 취득 직전에 트레이드시키는 형태로 구단을 운영하였다.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했고, 2000년대 초중반 AL 서부지구의 패자로 군림하기도 했기 때문에 스몰마켓 팀들에게 오클랜드산 머니볼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2010년대에서의 성공 사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탬파베이 레이스 등이 있다. 어슬레틱스가 투자에 인색한 구단인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연고지 오클랜드의 불안한 치안과 낙후된 도시 환경이 팀의 성장 잠재력을 깎아먹고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정리해 보면 원래부터 돈도 별로 없고, 잘 쓰지도 않는 구단인데, 주변 환경이 엉망이니 원래 써야 할 돈조차 안 쓸 정도로 더 안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2022년 역대 최저 관중수와 개막장 성적으로 이어진다. 1901년 아메리칸 리그의 창립과 동시에 리그에 참가한 에이스는 내셔널 리그에서 포수 겸 감독을 지낸 적이 있는 코니 맥을 구단 공동 소유주 겸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1914년까지는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는 강팀이었다. 그러나 이후 긴축 재정 때문에 전력이 약해지면서 꼴찌로 추락하는 비운을 맛본다. 하지만 1925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서 1929년부터 1931년까지 3년 연속 리그 우승 및 1929와 1930년, 다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때 주축으로 활약한 것이 레프티 그로브 지미 폭스, 알 시몬스이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인해 구단주이자 감독인 코니 맥의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다시 긴축 재정으로 돌입했기 때문에 레프티 그로브 및 지미 폭스와 같은 우수한 선수들을 팔아치우며 몰락했고, 코니 맥 시대에는 다시 우승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시절은 그냥 코니 맥의 시대라고 봐도 된다. 팀의 창단과 동시에 공동 구단주 겸 단장 겸 감독이었으며 감독은 그의 나이 87세까지 맡으며 무려 50년간 역임했고, 1936년부터 1954년까지는 단독 구단주였다. 결국 코니 맥 가문은 재정난 때문에 구단을 시카고 출신의 사업가인 아널드 존슨에게 매각한다. 새 구단주인 존슨은 팀이 성적 부진에다 관중 동원도 되지 않았기에 바로 1955년에 캔자스시티로 연고를 이전한다. 연고 이전한 해에는 130만이 넘는 관중을 동원했지만 이겨야 관중이 오지 결국에 캔자스시티에서 마지막 4년은 리그에서 팀 성적이 10-7-10-10으로 하위권에서 전전했고, 관중 동원도 좋지 못했다. 캔자스시티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한 건 연고 이전한 해인 1955년의 6위였다. 결국 캔자스시티에서는 단 한 번도 5할 승률조차 넘긴 해가 없었다. 필라델피아 막바지 시절인 1953년부터 캔자스에서의 마지막 해인 1967년까지 무려 15년 연속으로 5할 미만 승률을 기록하였다. 6년 동안 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던 존슨은 결국 60년에 구단을 찰리 핀리에게 매각하였다. 핀리는 팀을 살리기 위해 칙칙한 유니폼을 1963년에 노란색으로 바꿨고 1968년에는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연봉 총액도 낮고, 선수들의 면면도 그리 좋지 않아 보이던 이 팀은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매번 예상을 뒤엎고 미친 활약을 선보인 것이다. 2000년과 2001년에는 제이슨 지암비라는 뛰어난 타자가 버티고 있었다고 해도, 그가 FA로 팀을 떠난 뒤에도 2002년 20연승 기록을 세우고, 2003년에도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빌리 빈이 만들어낸 팀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팀 성적이 5할을 넘지 못했던 5년간은 짧지만 암흑기라고 볼 수 있고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2018년 시즌에는 4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그러나 가을의 꿈은 한 경기로 끝나고 말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연속으로 와일드카드 게임에 진출했으나 더 높은 곳으로는 향하지 못했으며 2020년에는 2013년 이후 7년 만의 지구 우승을 맛본 시즌이었지만 여전히 가을 야구에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2021년 시즌 때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플레이오프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시즌이지만 불펜진의 붕괴와 팀의 한계로 지구 3위에 그치고 말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의 개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에 소속되어 있고, 1901년 필라델피아 애슬래틱스란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과거 필라델피아, 캔자스시티 연고지 시절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가장 비인기팀이었다. 198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4전 전승으로 눌러 우승을 하였다. 영화 《머니볼》의 배경이 되는 팀이기도 하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메이저 리그 팀이다. 월드 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 팀이지만, 의외로 정규 시즌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다. 2020년 기준, 통산 승률 5할 이하(0.489)이다. 한 때는 슈퍼 스타 군단으로 군림하던 때도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구단주가 예산을 줄인 이후 스몰마켓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저예산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단장 빌리 빈 체제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부자 구단들이 즐비한 지구이다. 하지만 애슬래틱스는 이런 구단들을 앞질러 1등을 한다. 또한 애슬래틱스는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부자 구단들과의 대결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구단이지만 좋은 선수들을 많이 키우거나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한다. 또한 애슬래틱스는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다음으로 많은 우승을 차지하였다. 9번 월드시리즈 우승과 14번 리그 우승이 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마크 스티븐 캇세이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으로서 대학 시절 성적이 정말 좋았다. 특히 1995년에는 최고의 아마추어 야구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인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고, 팀을 대학야구 월드시리즈로 이끌며 시리즈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학시절의 활약은 당연히 캇세이를 1차지명감으로 불리우게 했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에 1라운드 전체 9번으로 불리우며 입단하게 된다. 입단 후 1996년에는 마이너에서 담금질을 거쳤는데, 이 때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야구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다. 1997년 21살의 나이로 비교적 빨리 데뷔했지만 많은 타석을 소화하진 못했다. 2014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특별자문으로 합류하며 은퇴 후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5년 샌디에이고의 타격코치가 되었다. 2015년 시즌 후, 오클랜드는 캇세이를 벤치코치로 임명했고, 기존 벤치코치였던 마이크 알드레티는 타격코치로 이동했다. 2017년에는 퀄리티 컨트롤 코치(QC)로 이동하였다가 2021년부터 기존 3루코치였던 알 페드리케가 팀을 떠나며 그 뒤를 이어 주루코치를 담당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많은 팀들의 감독 물망에 이름이 오르내리다 2020년 1월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새 감독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고, 최근에는 2020년 시즌 후 로이드 맥클렌던이 떠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감독직 면접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2022년 4월 23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8회 초 일라이 화이트의 득점이 비디오판독 끝 포수 션 머피의 홈 블로킹으로 세이프 판정되자 자리를 박차고 항의한 후 감독 시절 첫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시절(1901~1954)에도 레프티 그로브, 코니 맥, 지미 폭스, 알 시몬스 같은 명예의 전당 인물들이 있지만, 너무 옛 일이고 멀리 떨어진 동네 일이기도 해서 결번으로 기념하지는 않고, 애슬레틱스 프랜차이즈의 한 역사로만 남았다. 그래서 영구결번된 선수들은 모두 오클랜드 시절(1968년 이후) 선수들. 그리고 역대 우승 감독들이 모두 영구결번 대상에서 배제된 것도 특징이다. 영구 결번으로는  9. 레지 잭슨 : 통산 563홈런을 자랑하는 강타자. 오클랜드와 뉴욕 양키스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 MVP가 되었던 선수이자 두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된 명예의 전당 외야수. 별명도 10월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24. 리키 헨더슨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 통산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 27. 캣피시 헌터 : 1960년대 말~70년대 초반을 풍미한 이닝 이터 에이스. 오클랜드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끈 후, 뉴욕 양키스로 건너가 1977, 78년 2연패에 공헌했지만 지나친 혹사로 일찍 무너진 선수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34.(공동)롤리 핑거스 : 1970년대 오클랜드의 전성기 당시 팀의 마무리로 맹활약했던 선수. 통산 341세이브를 기록한 투수이자 1974년 월드시리즈 MVP.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데이브 스튜어트 :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에이스 투수로 팀 자체 명예의 전당에도 34번을 달고 헌액됐다. 1989년 월드시리즈 MVP.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43. 데니스 에커슬리 : 통산 197승 390세이브를 기록한 1이닝 마무리의 원조. 1992년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했는데,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수상하기 이전까지 투수로서는 마지막 기록이다. HoFer이자, 1980년대 후반 오클랜드의 전성기 주역. 애슬레틱스 구단에서는 2018년 9월 5일, 팀의 여러 분야로 헌신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자체 명예의 전당을 세웠다. 구장이 매우 열악한 관계로 아직 물리적인 공간은 없으나, 신구장 준공이 확정되면 명예의 전당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첫 해인 2018년도에는 7명의 인물이 헌액되었다. 2021년 8월 12일, 10명의 추가 헌액이 발표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인물들은 미키 코크런, 레프티 그로브와 같은 오래 전 인물들이다. 2021년 11월 12일, 1986년부터 무려 35년간 NBC 스포츠 캘리포니아 소속으로 애슬레틱스의 경기를 중계하다가 암으로 타계한 레이 포시를 202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21년간 팜 디렉터로 활동하며 선수 육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키스 리프먼, 60~70년대 애슬레틱스의 스타 3루수 살 반도, 53년간 장비 관리자로서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헌신을 한 스티브 부치니크 등이 헌액된다. 역대 한국인 선수 로는 김성민 - 32번, 포수, 2012년~2015년 까지 싱글 A 쇼트 버몬트 레이크 몬스터즈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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