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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5. 16.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모자 로고, 구단 로고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역사 

아메리칸리그 창립 멤버였던 워싱턴 세네터스가 1960년 미네소타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를 연고로 하는 야구구단이 사라지게 되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이를 핑계 삼아 D.C. 사람들의 불만도 무마시킬 겸해서 메이저리그의 규모의 확장도 일찌감치 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구단 창설을 승인하였다. 이에 1961년에 워싱턴에서 새로운 팀이 발족되었는데 팀 이름을 워싱턴 세네터스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960년까지의 워싱턴 세네터스는 이제 미네소타 트윈스가 된 팀의 역사이고 새로 탄생한 팀은 완전히 다른 팀임을 못 박았다. 정작 기존 워싱턴 세네터스와는 다른 팀임을 표방하였으나 D.C. 의 야구단은 야구를 못한다는 전통만큼은 고스란히 물려받아 워싱턴 프랜차이즈 시절 팀 성적은 대대로 하위권이었다. 신생팀이란 약점이 있었다곤 해도 1969년 86승 76패의 기록을 제외하면 거의 매년 3할~4할 승률을 기록하는 약팀이었다. 그 덕분에 관중동원력도 늘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중간에 메이저리그 전설의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를 감독으로 초빙하는 등 나름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은 하였지만 결국 재미를 보지 못했고, 1967년에 팀을 매입했던 구단주 팀 쇼트는 팀을 팔아버리거나 연고지를 옮기겠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텍사스 주 알링턴 시의 경우 시장이 의욕적으로 나서서 메이저리그 구단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연고지 이전 직전까지 갈 뻔했으나 당시 아메리칸 리그 구단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 세네터스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협상이 진행되었고 1972년 공식 절차를 통해 텍사스로 연고지 이전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팀 이름도 텍사스를 비롯한 서부지역에서 유명했던 순찰 경비대원을 부르는 레인저의 이름을 따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변경하였다. 텍사스 이전 이후로도 좋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간간이 상위권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만년 하위의 신세는 벗어났다. 1974~1980년까지 재임한 브래드 코벳 구단주는 리치 지스크, 버트 캠퍼너리스, 도일 알렉산더 등 FA로 풀린 선수들을 야심 차게 영입하고 고액 트레이드까지 벌였으나 이들이 팀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바람에 경영이 엉망이 됐고, 1980년 에디 칠리스가 구단을 산 후 '매월 목표치 도달' 등 압박경영을 벌였지만 한 번도 플레이오프를 못 간 채 1989년에는 조지 워커 부시가 팀을 사들였다. 반면 팀은 1986년 바비 밸런타인 감독이 부임하고 루벤 시에라, 바비 위트 등의 젊은 루키들의 포텐셜이 폭발하면서 87승 75패를 기록하였고, 그 후 1992년 밸런타인 감독이 해임될 때까지 5할을 넘나드는 성적을 올렸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은 계속 실패했다. 이 시기 활약한 선수들이 당시엔 영건 투수였던 케빈 브라운 케니 로저스, 그리고 젊은 1루수 라파엘 팔메이로였다. 첫 번째로 맞은 전성기는 1996년부터 첫 지구 우승을 하면서부터였다. 타선에는 원조 곤조, 원조 타점머신 후안 곤잘레스와 공수를 겸비한 최강의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러스티 그리어, 윌 클락 등이 뒤를 받쳤다. 이어서 1998, 1999년에도 지구우승을 차지한다. 투수진은 릭 헬링과 애런 실리가 4점대 후반의 방어율에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20승 19승 투수가 되었으며, 1999년에는 다시 영입한 라파엘 팔메이로가 47 홈런 148타점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고 이반 로드리게즈가 MVP를 차지, 96승으로 역대 최다승을 거두기도 했다. 콜로라도 로키스 다음 가는 타력의 팀이었다. 공격적인 투자를 천명했지만 유망주를 키우면서 내실 있는 강팀을 만들어 가던 당시 단장 덕 멜빈과 충돌하였고, 결국 멜빈 단장은 2001 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난다. 그리고 멜빈의 후임 단장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황금기를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공격적인 투자는 오히려 역 효과를 양산하고 결국 팀 내 최고의 스타인 이반 로드리게스는 붙잡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결국 2003년 벅 쇼월터 감독을 영입하고, 알폰소 소리아노 등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리빌딩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긴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쇼월터 감독이라도 투수진의 붕괴는 어떻게 해결하지 못해 성적은 늘 하위권이었다. 2004년에 5할을 넘겼지만 그 이후로는 4년간 다시 5할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래도 75승 이상은 유지해서 팀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때로는 노장들 때로는 젊은 선수들이 힘내면서 타력은 좋았다. 문제는 투수진. 2004년 팀승률 5할을 넘었던 해 투수진이 한 번 반짝했지만 투수진 성적은 꼴찌에서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다. 2000-2003년까지 계속 지구 최하위였고, 시애틀 매리너스가 무너진 2004년부터는 지구 3위를 유지했지만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결국 하트는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2005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고, 쇼월터도 이듬해 그 뒤를 따라갔다. 2005 시즌이 끝나고 존 대니얼스 단장이 취임하고 이래저래 능력에는 의문부호가 있었지만 팀의 젊은 슈퍼스타 마크 테세이라를 깜짝 트레이드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유망주를 왕창 챙겼고, 조시 해밀턴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는가 하면 신인 드래프트와 중남미 스카우트를 통해 팜을 안정화시키면서 성적을 쭉쭉 끌어올려 2010년 서부지구 1위를 순항하며 4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였다. 여기에는 투수진의 안정이 큰 역할을 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대투수 놀란 라이언이 들어오고 이하 프런트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수준급의 선발라인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 영입한 최고의 투수코치 마이크 매덕스가 그들을 메이저에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2008년 5.37로 꼴찌였던 팀 평균자책점은 2009년 4.38로 8위, 2010년에는 3.93으로 3위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지구우승에 그치지 않고,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탬파베이 레이스를 꺾는 데 성공하며, 팀 역사 최초로 ALCS에 진출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WS에서는 타선이 단체로 무너지면서 결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1:4로 패했다. 2022년 시즌 때 스토브리그가 열리면서 원래 빅마켓인 텍사스도 어느 정도 참여해 전력보강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있었으나, 2021년에 저조했던 것이 원인이었는지 막상 FA시장이 열리자 선발 존 그레이, 콜 칼훈을 쓰기 시작, 2021년 11월 29일 토론토의 거포 2루수이자 유격수 마커스 시미언 영입하면서 끝난 줄 알았는데 다음날 유격수 최대어이자 FA 1위 코리 시거를 영입하는 폭풍 행보를 보이면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스토브리그에서 무려 한화 6500억을 쓴 만큼 철수할 가능성이 있지만, 돈 쓴 김에 그간 열심히 구애해 왔던 텍사스 주 댈러스-포트워스 연고 출신 클레이튼 커쇼 영입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어 이번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는데 커쇼가 다저스에 1년 남기로 해 불발되었다. 이렇게 해도 성이 안 차는지 트레이드 시장에 매물로 올라온 오클랜드의 맷 올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던 중에 아이재아 카이너-팔레파 로니 엔리케즈를 미네소타에 내주고 미치 가버를 영입해 포수진을 보강했다. 다만 맷 올슨은 1:4 트레이드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해 데리고 올 수 없게 되었다. 커쇼를 놓친 것을 만회하려고 선발진을 보강 위해 보스턴 레드삭스 계약이 만료된 개럿 리차즈를 데려온 텍사스다. 지난 시즌 마커스 시미언 코리 시거를 영입해서 외부 영입이 없을 줄 알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22년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였고 2022년 11월 6일 애틀랜타와 트레이드로 콜비 알라드를 내주고 제이크 오도리지를 데려왔다. 4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3차전에서는 마르틴 페레스가 5.2이닝 동안 8피 안타를 허용했음에도 1 실점만을 내주며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고, 조시 영의 홈런과 마커스 시미언의 적시타에 힘입어 1:2로 승리하여 쾌조의 스타트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1,2차전에서는 타선이 2경기동안 단 2점을 내는데 그치는 빈공에 시달리며 2연패를 했으나, 3차전에서는 개막전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던 제이콥 디그롬의 6이닝 2피 안타 2 볼넷 11K 2 실점(1 자책점)의 호투에 힘입어 2:5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어냈다.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개요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소속으로 연고지는 텍사스 주 알링턴이며 199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렸으며, 2009년부터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한 뒤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으로 준우승에 그친 것이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결국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텍사스 주 첫 월드 시리즈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뺏기게 되었다. 현재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창단 이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못해본 팀 중 가장 오래된 팀이다. 한국인 선수인 박찬호 추신수가 거액의 FA 계약을 맺고 뛰면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팀이다. 미네소타주로 옮겨간 워싱턴 세너터스와 같은 이름으로 1961년에 창단되었으나, 1972년 워싱턴 D.C. 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으며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1969년 창단 후 3할 승률을 벗어나지 못하자 워싱턴 D.C.로 이전될 뻔했지만 1974년 새 구단주 레이 크록에 의해 인수되어 좌절됐다. 텍사스주 출신의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이 구단을 소유한 적이 있다. 단장은 존 대니얼스, 감독은 제프 베니스터이며 현재의 구단주인 톰 힉스는 리버풀 FC의 구단주로도 유명하다. 톰 힉스 이전의 구단주 중에서는 전 미국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가 있었으며, 그는 청문회에서 그의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구입이 단순한 돈세탁용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이전 감독이었던 론 워싱턴은 원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3루 코치였으나 전 감독이었던 벅 쇼월터의 해임으로 인해 2006년부터 감독직을 맡아 왔었다. 그러나 2014년 9월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하고 새로운 감독인 제프 베니스터가 취임하였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적은 1999년이며, 그 이후로는 항상 같은 지구의 다른 팀들보다 빈약한 투수력으로 인해 항상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좌절하곤 했다. 그러다 마침내 2010년 9월 2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4-3으로 꺾고 11년 만에 AL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 지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ALDS에서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시리즈전적 3대 2, ALCS에서는 뉴욕 양키스를 4대 2로 제압하며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나 월드시리즈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종합전적 1-4로 패퇴하여 창단 첫 우승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2011년 ALDS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시리즈 전적 3대 1, ALCS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4대 2로 제압하며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종합전적 3-4로 또다시 우승에 실패하였다. 12월 22일 추신수 선수가 7년 총액 1억 3천만 달러라는 금액으로 계약했다. 1994년 레인저스의 투수 케니 로저스가 레인저스 구단 사상 유일의 퍼펙트 기록을 세웠다. 그래도 9회 초 로저스의 퍼펙트게임을 지켜낸 신인 중견수 러스티 그리어의 그림 같은 호수비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편이다. 현재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구단 중 가장 창단한 지 오래된 구단'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같은 1961년에 창단했으나 에인절스는 2002년 우승했다. 2017년까지 휴스턴 애스트로스보다 먼저 우승했다면 1년 늦게 창단한 같은 주의 라이벌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이 타이틀을 넘겨줄 수 있었지만 휴스턴이 2017년에 텍사스 소재 야구팀 중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버렸다. 다만 2019 MLB 사인 훔치기 스캔들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1 라운더 투수는 텍사스에서 데뷔를 못 하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전설의 DVD 트리오의 존 댕크스, 토마스 다이아몬드는 아무도 텍사스에서는 데뷔를 못 했고, 특히 댕크스는 화이트삭스의 원 클럽 맨으로 은퇴하기까지 한다. 이후 에릭 헐리, 블레이크 비번, 케이시 카이커, 마이클 메인, 닐 라미레즈 등 텍사스는 1 라운더 투수 유망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너클볼을 익히고 나서야 성공한 R.A. 디키, 일본에서 성장해서 돌아온 콜비 루이스까지 올라가니 사실상 릭 헬링 이후 토미 헌터가 메이저에서 롱런한 텍사스 데뷔 1 라운더 투수 유망주인 것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브루스 더글러스 보치 :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으로 21세기 최고의 야구 감독 중 한 명으로, 2010, 2012, 2014 시즌 짝수해에 당시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세 번 우승시킨 명장이다. 역사상 단 7명뿐인 프랑스 출생 메이저리거이기도 하다. 25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있으면서 통산 4,032경기 출장 2,003승 2,029패(통산 승률 약 49.7%)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감독 자격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버지니아 주에서 자라 이스턴 플로리다 주립 칼리지를 나와 1975년 보충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3순위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지명받았다. 1 라운더라는 점에서 기대치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수로서는 딱히 성공을 거두지 못하며 빅리그 통산 10 시즌 동안. 239 타율과 26 홈런 93타점에 그쳤다. 여담으로 피트 로즈 타이 콥을 넘어 올타임 최다안타 기록을 세우는 4192호 안타를 때려내던 순간에 파드리스의 포수를 봤다. 참고로 이런 볼품없는 선수시절이었지만 이색 기록이 하나 있다. 보치는 빅리그 통산 끝내기 홈런이 두 개인데, 이 중 하나가 전설적인 대투수 놀란 라이언에게 때려냈고 이 홈런이 라이언 커리어 통산 유일한 끝내기 홈런 허용이다. 1988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보치는 곧바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마이너리그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처음은 하이싱글 A 마이너 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다음 해 바로 해당 마이너 팀의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 이후 1992년 더블 A 마이너 팀 감독까지 역임하면서 순차적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마이너리그 코치를 하면서 실적이 좋자 1993년 빅리그 코치로 승격되어 3루 코치를 담당했으며 1994년 이후 기존 감독이던 짐 리글먼이 성적부진으로 팀을 나가게 되자 바로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무려 39세의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영구결번으로는 7. 이반 로드리게스 : 1990년대 텍사스의 황금기를 이끈 포수이자 내셔널리그의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1990년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했던 포수. 더불어 요기 베라, 자니 벤치, 칼튼 피스크와 함께 역대 최강의 공수겸장 포수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이다. 10. 마이클 영 : 2000년대 텍사스의 암흑기를 지탱했던 선수이자 클럽하우스 리더. 전성기 때는 스즈키 이치로에 버금가는 안타 생산력과 준수한 갭파워로 2010년대 초반 텍사스의 핵타선을 이끌었으며, 팀의 요구에 따라 수없이 포지션을 옮기는 등 팀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다. 26. 자니 오츠 : 1990년대 중후반 레인저스의 황금기 때 세 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감독. 2004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29. 아드리안 벨트레 : 2010년대 최고의 3루수 중 하나로 텍사스 이적 이후 공수양면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결국 3000안타 고지를 밟은 선수. 다저스, 시애틀, 보스턴을 거쳐 입단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으나 30대에 들어서 늦은 전성기를 맞으면서 명예의 전당급으로 커리어를 끝마친 선수이다. 34. 놀란 라이언 : 팀의 공동 구단주였기도 한 인물로,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서 유이한 세 구단 영구결번 선수이다. 명예의 전당에 고향 텍사스 레인저스 모자를 쓰고 들어갔기에 자연스럽게 영구결번되었다.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42세의 나이에 레인저스로 이적했음에도 미친 듯이 삼진을 잡아내며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해냈고 6, 7번째 노히터 경기와 5000 탈삼진도 레인저스 소속으로 이루어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역대 한국인 선수로는 박찬호 - 61번, 투수, 2002년~2005년 , 추신수 - 17번, 외야수, 2014년~2020년 , 양현종 - 투수, 2021년~2021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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