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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5. 14.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의 모자로고, 구단로고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의 역사 

MLB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소속의 프로 야구단이며 필라델피아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 팀명인 필리스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약팀 중 하나였으며 이유는 전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10,000패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단지 팀 역사가 길어서 얻게 된 기록이 아닌 것이, 다른 후발 만패팀들의 경우 통산 승률(2021 시즌 종료 기준) 5할이 넘는 반면 원조 만패팀인 필리스는 혼자서 -1000이 넘는 놀라운 승패 마진을 자랑한다. 2019년 9월 30일에는 시즌 최종전에 딱 맞춰 11,000패를 달성하였다. 2022년 8월 16일, 드디어 염원하던 10,000승을 거두었다. 팀 로고 뒤에 있는 그림은 바로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유의 종이다. 경기장 내에도 똑같이 생긴 종이 하나 있으며, 필리스 선수가 홈런을 날리면 그 종이 울린다. 1883년에 창단된 필리스는 창단시즌을 제외하면 초기에는 대체적으로 중위권을 왔다 갔다 했으나, 당시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8팀 중에서 1위를 해야 했기 때문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웠다. 게다가 내셔널 리그 초창기에는 뉴욕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가 리그를 주름잡고 있었다. 1915년 에이스 그로버 알렉산더를 앞세워 리그 1위를 차지하면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보스턴 레드삭스와 맞붙었다. 1차전은 알렉산더를 앞세워 이겼지만 이후 4경기 연속 1점 차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다음 해인 1916년에는 브루클린 다저스에 2게임 뒤진 2위로 아쉽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고 1917년 역시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필리스 팬들은 이후 31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1918년 팀의 전력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그로버 알렉산더의 연봉을 올려주기 싫었던 구단주는 그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하였고, 이후 팀은 무지막지한 침체기에 빠진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없기는 하지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카고 컵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나름 엄청나게 긴 암흑기를 보낸 구단도 이런 기록 앞에서는 나름 선전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도합 17번의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12번의 세 자릿수 패배, 전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5년 연속 세 자릿수 패배 및 5번의 2할대 승률을 기록하였다. 이 기간 동안 최고 승률이 1932년의 0.506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즌은 전부 5할 미만을 기록하였다. 즉 14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을 기록하고 한 번 턱걸이 위닝시즌을 하자마자 또 16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을 기록하였다. 또 이 기간 동안 평균 승률은 0.373이고 승패마진이 -1000을 넘는다. 1930년에는 팀 방어율 6.71을 기록. 이는 역시 메이저리그 최악의 기록이다. 팀이 이 정도로 바닥을 친 데에는 구단주였던 윌리엄 베이커 때문이었다. 우선 팀의 에이스인 그로버 알렉산더를 연봉이 올려주기 싫다고 보내버렸고, 바닥 친 성적 때문에 관중석이 비어버리자 응원석에서 양을 키우는 기행을 저질렀다. 서브컬처에서는 필리스를 떠난 선수가 필리스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그가 1930년 사망한 이후 부인과 비서에게 구단이 상속됐고, 부인이 경영을 맡았으나 베이커의 아내조차도 2년 만에 사망해 비서의 남편 제럴드 누젠트에게 구단이 넘어갔다. 갑자기 구단주가 된 누젠트는 팀 운영에 소홀했고, 이에 따라 1942년까지 팀은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5년 연속 세 자릿수 패배를 기록한 것도 이 구단주의 재임기간으로, 베이커 시절보다도 더욱 부진한 성적을 냈다. 1943년에는 대학 야구선수 출신인 제재업 중개인 윌리엄 콕스에게 넘어갔고, 1945년까지는 아주 잠깐 Blue jay를 로고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만 콕스는 1943년 버키 해리스 감독과 갈등 끝에 그를 해고했고, 이에 감독이 팀을 가지고 도박질을 한 사실을 폭로하자 콕스 구단주는 사업가 R.R.M. 카펜터 주니어에게 팀을 팔았다. 이 와중에 팀의 타선을 혼자서 이끌었던 선수가 바로 척 클라인이다. 척 클라인은 위에서 언급한 윌리엄 베이커가 재임기간 동안 유일하게 스카우트한 선수로, 1928년에 데뷔하여 1929년 홈런왕, 1930년에는 타격왕을 기록하였고 1932년에는 현재까지 유이한 기록인 홈런왕과 도루왕을 동시 석권하여 NL MVP를 수상하였다. 다음 해인 1933년에는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였지만 팀 성적이 7위로 떨어지자 결국 리빌딩을 위해 컨텐더팀이었던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에 다시 필리스로 돌아왔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기의 막바지인 1947년에는 최악의 흑역사를 만들어낸다. 당시 팀의 선수 겸 감독이었던 밴 채프먼이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공개적으로 재키 로빈슨에게 굴욕을 준 사건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방망이 악수 사건이다. 이 시기의 팀 성적에 대해서는 워낙 오래전이라 언급도 없지만 이 일화는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그야말로 구단 역사 상 최악의 흑역사이다. 1949년에 16년 연속 5할 미만 승률 기록을 끊어내고, 1950년에는 리그 우승,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5년 연속 월드시리즈를 거머쥐었던 뉴욕 양키스. 결국 4: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에는 중위권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지만 1961년에는 무려 23연패를 당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서 3위 기록이며 그 위의 기록은 전부 1800년대에 나온 기록이다. 이 해 부진했던 팀 레전드 로빈 로버츠 1승 10패라는 성적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61년 23연패를 하고 3할 승률도 겨우 찍었지만(승률 0.301) 바로 다음 시즌 5할 승률을 기록하였고, 1964년에는 아예 시즌 초반부터 독주하면서 시종일관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지켜온다. 마지막 12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필리스는 90승 60패로 정확히 승률 6할, 그리고 공동 2위인 레즈와 카디널스가 83승 66패로 두 팀과는 모두 6.5 게임차의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필리스는 14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마지막 12경기 중 첫 경기에서 신시내티 레즈의 결승 홈스틸로 인한 패배 이후 홈 7연패를 포함, 무려 10연패를 당해 연승을 거둔 레즈, 카디널스에 결국 따라 잡히고, 카디널스와 1경기차(레즈와는 공동 2위)로 포스트시즌을 탈락하는 비운을 겪는다. 현지에서는 일명 'Phold of 1964'로 불리며 아직까지도 1951년 다저스와 더불어 역대 최악의 사례로 회자된다. 1964년 이후에는 당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1972년 팀의 에이스인 스티브 칼튼이 27승을 거두었을 때, 팀은 겨우 59승을 했다. 역사상 최고의 3루수라 불리는 마이크 슈미트와 에이스 스티브 칼튼을 앞세워 197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해 마침내 1980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다. 이것은 창단 98년 만의 일로 메이저리그 팀 중에서 창단 이후 우승하는데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팀이다. 참고로 창단 이후 가장 짧은 기간에 우승한 팀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4년이다. 여담으로, 1980년 이전에는 필리스가 포스트시즌 시리즈를 승리로 장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한 1980년 NLCS가 구단 역사상 첫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인 셈이다. 1981년에 빌 자일스 등 투자자 6명이 카펜터 가문으로부터 팀을 사들여 1983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패했다. 팀은 1993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패하게 된다. 그 이후 성적은 침체기였다. 하지만 암흑기를 지킨 에이스 커트 실링을 디백스로 2000년에 트레이드할 즈음, 팀의 상태는 차차 좋아지고 있었다. 스캇 롤렌이 1997년 신인상을 타면서 화려한 데뷔를 하고 바비 아브레우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스틸해 왔다. 여기에 팻 버렐, 지미 롤린스 등 타자 유망주들이 등장했고, 팀의 페이롤도 늘어나 짐 토미를 영입하고, 실패하긴 했지만 톰 글래빈 영입에 뛰어들거나 스캇 롤렌에게도 거대한 연장계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1년부터는 2002년 80승 외에는 계속 85승 이상, 5할대 초반의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지구우승을 놓치고 와일드카드마저도 매번 간발의 차로 탈락하여 포스트시즌을 가지는 못했다. 2022년 팀은 11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루어 낸다. 카일 슈와버 닉 카스테야노스를 질러버리며 엄청난 타선을 만들었다. 마무리 헥터 네리스의 이적으로 불펜에 공백이 생기자 코리 크네블 쥬리스 파밀리아영입하여 메꾸는 데 성공하였다. 시즌 초 몇 경기는 잘 나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연패를 우수수 적립하고 다시 원래의 좋지 못한 패배의 늪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월드 시리즈에서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2승 4패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하게 된다. 비록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애초에 압도적 패가 예상될 만큼 전력차가 많이 났지만 나름 선전한 데다가 정규시즌 거의 가망이 없던 팀이 회생하면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고 중부지구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디팬딩 챔피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모두 이기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신데렐라 시즌을 만들어 냈다. 이를 가능케 한 롭 톰슨 감독 대행은 내년 2023년부터는 정식 감독으로서 다시 한번 팀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재도전하게 된다. 전력누수도 크지 않아 필요 직책만 보강이 된다면 월드 시리즈 우승도 가능함을 보여준 희망적인 시즌이라 하겠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의 개요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동부 지구 소속이다. 1883년 창단하였으며, 1980년에 창단한 지 98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08년 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28년 만에 우승했다. 박찬호가 2009년에 재적되어 있었다.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명문 구단이다.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외야수 그렉 루진스키 등 1970~80년대를 주름잡은 대스타들이 이곳 출신이며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가 1911년 24 선발승으로 1900년 이후 순수신인 최다 선발승 기록을 세웠고 1915년 30 선발승, 1916년 33 선발승, 1917년 30 선발승으로 1900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인 3년 연속 30 선발승 이상을 기록했으며 이들 중 1916년 거둔 33 선발승은 1900년 이후 역대 내셔널리그 최다 선발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산층 이하의 이주민들이 중심이 된 필라델피아 도시 특성상 스포츠팀 팬덤이 종목불문하고 강성인데 그중에도 독보적으로 독한 팀이 필리스. 특히 펜실베이니아주 라이벌인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는 종목 불문하고 두 도시 간에 무지막지한 라이벌리가 존재하지만 야구에서는 98년 이후의 MLB 지구 개편 이후로 피츠버그 파이리츠와는 디비전 자체가 분리되어 버렸고 몇 십 년째 암흑기에 빠지며 라이벌리가 시들어진 경향이 있다. 하지만 MLB 측에서는 이 두 팀이 MLB에서 가장 지독한 팬덤을 보유하였고 뉴욕의 양 팀을 증오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각 연고지에는 다른 리그 팀이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새로 라이벌리를 형성하려고 인터리그 경기를 많이 배정하고 있는데, 정작 팬들끼리는 서로 침체기가 굉장히 길었던 비통한 흑역사 때문인지 잘 대해주는 듯하다. 한때는 야구하기 가장 안 좋은 팀으로 꼽힐 정도였고 잘하는 자기 팀 선수라도 몇 경기 부진하면 야유 보내기로 유명하고 까이는 선수에게는 건전지 맥주병 같은 걸 던지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필리스의 투타의 얼굴이자, 1980년 첫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 명전 멤버이기까지도 한 마이크 슈미트 스티브 칼튼 조차도 학을 뗄 정도다. 은퇴한 지금은 프랜차이즈 레전드로서 구장에 나타나면 기립박수로 환영해 주지만 이들도 현역 때는 100번 잘하다가 한번 못하면 100번 잘한 걸 덮고도 남는 팬들의 야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커트 실링 정도로 고생하니 야유가 적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롤렌 트레이드의 핵심이었던 플라시도 폴랑코는 오자마자 리그 최고 2루수의 면모를 보여줬음에도 2005년에 체이스 어틀리를 위해 트레이드되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트레이드한 필리스로 돌아와 2009 AL 2루 골드글러버로서 2010년 필리스 3루수로 변신하면서 필리스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필리스 팬들의 진정한 공적은 1993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끝내기 쓰리런 홈런으로 필리스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조 카터다. 그 끝내기 홈런 이후로 조 카터는 은퇴할 때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야유세례를 받아야 했으며 은퇴한 지금도 용서가 없다. 그리고 조 카터, 로비 알로마 등 좋은 팀을 만들어 필리스에 비수를 꽂았던 팻 길릭 단장 역시 2006년 취임 때 팬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미국의 46대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필리스 팬이라고 한다. 만 2022년 월드 시리즈에서 필리스가 우승한다면 임기 중에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2022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 결국 휴스턴 애스트로스였기 때문에 이는 여담으로만 들린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로버 루이스 "롭" 톰슨은 캐나다 출생의 야구선수로, 현재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을 맡고 있다. 톰슨은 인터카운티 야구리그의 스트라트포드 내셔널스에서 두드러진 선수였다. 그는 클레이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 모집되어 1년간 야구를 한 뒤 1년 후 캔자스 대학교로 편입했다. 1984년과 1985년에 제이호크스의 안타머신으로 팀을 이끌었고 단일 시즌 최고 타율을 보유한 선수이다. 198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32라운드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지명되었다. 1998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만 뛰었고 포수와 3루수로 경기에 나셨는데 타율. 225 출루율. 312 장타율. 304로 공격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수비력이 좋았다. 경기 수로는 포수로 136경기 3루수 55경기에 출전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시범종목이었던 야구에서 캐나다 국가대표팀의 선수로 뛰었다. 1988년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마이너팀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 1990년 뉴욕 양키스 마이너팀으로 이직한다. 2008년 조 지라디 신임 감독을 보좌하는 벤치코치로 임명되면서 선수로써 못 이룬 메이저리그 데뷔의 한을 풀었고, 지라디 임기 말년인 2017년까지 벤치코치 지위를 유지하면서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201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벤치코치로 이직해 게이브 캐플러(2018~2019), 조 지라디(2020~2022) 두 감독을 차례로 보좌하다가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조 지라디 감독을 대신해 감독대행을 맡게 된다. 감독대행 취임 당시 22승 29패로 승패마진 -7이었던 팀을 취임과 동시에 9연승으로 5할 승률로 끌어올렸고, 그 기세로 10월 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 전을 3-0으로 승리하면서 필리스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가을 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제압하며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11년 만의 디비전시리즈 홈경기를 선사했고, 2022년 10월 10일(한국시간) 자로 2년 연장계약을 맺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다. 그리고 전년도 우승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꺾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물리치면서 13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2022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서는 0-5로 지던 경기를 6-5로 극적으로 역전승했고, 톰슨 감독 본인도 효과적인 투수 운용을 함으로써 승리에 기여했다. 6차전에서는 거꾸로 잭 휠러를 내리고 호세 알바라도를 올려 역전 쓰리런포를 맞고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그쳤다. 다만 망해가던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리고 그 포스트시즌에서도 카디널스와 애틀랜타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간 공로가 있기에 향후 감독으로서의 전망은 밝다. 한국 선수를 많이 영입한 구단은 아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필리스 출신 선수들이 KBO 리그에 외국인 선수로 상당히 많이 영입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구단이기도 하다. 영구 결번으로는 P.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통산 373승에 빛나는 대 투수. 필라델피아에서 두 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공에 머리를 맞아 간질에 시달리면서도 일군 대기록을 달성한 선수. 그가 뛴 시절은 등번호가 없던 시대라 기념만 하고 있다. P. 척 클라인 : 통산 0.320 타율을 기록한 외야수. 베테랑 위원회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고,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메이저리그 위대한 100명 안에 드는 선수. 현역 시절 등번호를 자주 바꿔서 등번호를 영구결번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 리치 애시번 : 통산 0.308 타율을 기록한 중견수로 명예의 전당에는 베테랑 위원회를 거쳐 입성했다. 선수로서 10년 활약했고, 필라델피아의 전속 해설자로 35년간 활약했다. 필리스의 홈구장 외야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애시번 앨리가 조성되어 있다. 14. 짐 버닝 : 선수로는 221승을 거두며, 역시 베테랑 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며, 역사상 5명뿐인 양대리그 노히터를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사실 더 유명한 것은 정치인. 켄터키주에서 25년간 연방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지냈다. 15. 딕 앨런 : 필리스와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외야수. 2020년에 타계했다. 20. 마이크 슈미트 : 필라델피아 필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3루수. 통산 bwar 106.8을 기록했으며, 548 홈런 1598타점에 12번의 올스타, 10번의 골드글러브, 6번의 실버슬러거, 세 번의 리그 MVP와 1980년 필리스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월드시리즈 MVP를 기록하였다. 32. 스티브 칼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다. 통산 329승으로 사이영상 수상 4회에 빛나는 투수. 역사상 최고의 슬라이더를 보유했다는 평을 받는다. 참고로 기자랑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아서 은퇴할 때까지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34. 로이 할러데이 : MLB 최후의 완투형 에이스. 필리스로 이적한 첫 해인 2010년에 바로 사이 영 상을 거머쥐며 양대리그 사이 영 상 수상자가 되었고 클리프 리, 로이 오스왈트, 콜 해멀스와 함께 판타스틱 4로 일컬어지는 황금 선발진을 구축하며 2010년대 초반 필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36. 로빈 로버츠 : 통산 286승을 기록한 1950년대 최고의 에이스. 엄청난 이닝 이터로 1950년대 최다 이닝, fWAR 1위 기록을 갖고 있디. 명예의 전당에 기자 투표로 입성했다. 클리프 리와 함께 3 연속 완봉승 프랜차이즈 기록을 갖고 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이외에도 라이언 하워드의 6번, 지미 롤린스의 11번, 체이스 어틀리의 26번, 콜 해멀스의 35번은 팀 영구 결번 유력 후보이다. 해멀스를 빼면 나머지 번호들은 그들이 필리스를 떠난 이후 현재까지 누구에게도 지급된 적이 없다. 또한 현역 선수 중에는 브라이스 하퍼가 현재와 같은 페이스를 향후 몇 년간 더 유지해 준다면 영구결번 가능성이 있다. 역대 한국인 선수는 박찬호 - 61번, 투수, 2009년 , 김일엽 - 투수, 2001년 ~ 2003년 , 김현수 - 31번, 외야수, 2017년 가 있었다. 현역 주요 선수로는 에런 놀라 , 제이크 아리에타 , 앤드루 매커친 , J. T. 리얼무토 , 브라이스 하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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